▲김의화 문화독자부 부장 |
이번 월드컵에서도 '세이 노 투 레이시즘(Say No To Racism)', 인종주의 반대 캠페인이 등장했다. 경기장 전광판에 '인종주의 안 돼!'라는 문구가 표출되고 선수들은 펼침막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이 전 세계 수십억 시청자들의 눈에 들어왔다.
지난 4월 스페인 리그전에서 바르셀로나팀의 브라질 출신 다니 아우베스가 코너킥을 차려고 코너 클래그를 향해 걸어가고 있을때 관중석에서 바나나가 날아들었다. 바나나를 던지는 것은 유색인종 선수를 원숭이에 빗대는 모욕의 뜻이다.
아우베스는 코너 킥을 차기 전 바나나 껍질을 벗겨 천연덕스럽게 먹어치웠고 경기 후 “바나나를 던진 그에게 감사하고 싶다. 골을 넣을 수 있도록 에너지(바나나)를 줬다”고 말했다. 아우베스의 의연함에 상대팀인 비야레알 구단은 바나나를 던진 사람을 찾아내 회원권을 몰수하고 평생 경기장에 들어올 수 없도록 했으며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이 SNS에 '우리 모두는 원숭이다'는 글과 함께 바나나를 들고 있거나 먹는 사진을 올리며 연대했다.
FIFA는 모든 대회에서 선수나 팀 스태프, 관중이 특정 팀이나 선수에 대해 인종차별적 언동을 하면 승점을 깎고 대회 출전 금지라는 중징계를 내릴 정도로 단호하다.
인종차별, 인종혐오의 역사는 고대부터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와 오죽했으면 '인종차별의 역사'를 쓴 프랑스 철학자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는 '천개의 머리를 가진 히드라'로 표현하기도 했을까. 인류는 호모사피엔스라는 하나의 종(種)이며 생물학적 개념으로 존재하지 않는 인종주의가 탐욕과 결합해 전쟁과 학살과 차별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해 온 것이 인류사였다.
안전행정부의 '2014년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 자료를 보면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은 156만9740명으로 대전시민 150여만명 보다 많다. 우리나라 주민등록인구 대비 3.1%, 기초자치단체 227곳 중 49곳에 외국인 1만명 이상 살고 있다.
그러나 길을 물어오는 외국인의 '색깔'에 따라 친절도가 다르고 원어민을 구하는 사이트에는 'white person only' 일색이다. 어느 귀화한 동남아인이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말하자 “거길 왜 가느냐?”는 생뚱맞은 질문을 받는다. “왜 가는지를 왜 묻느냐, 집에 가는데 뭐 문제 있느냐?”고 따진다. 그 목적지는 비교적 잘사는 동네였다.
지난 2001년 아프리카 가나 국적의 이주노동자와 '성남외국인노동자의 집'이 크레파스 색깔 가운데 특정색을 '살색'이라고 표현한 것은 인종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살색'은 헌법 제11조의 평등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결정, '살색' 대신 '연주황'을 쓰도록 한다.
하지만 초중등 학생들이 '연주황'이란 말이 한자라서 어려운데다 어린 학생들을 차별하게 되므로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살구색' 또는 '봉숭아 색'으로 바꿔달라고 진정해 최종적으로 2005년 8월 '연주황'을 '살구색'으로 개정고시, 오늘에 이른다.
인종주의는 역설적으로 스스로 못났음을 감추기 위해 사람들을 생물학적 구분법을 도구로 구분해 혐오와 차별, 폭력행사와 지배를 합리화하고 널리 확산시킨다.
매년 12월 18일은 UN이 정한 '세계 이주민의 날'이며, 196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차별 법률에 반대하며 평화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에게 경찰이 총을 쏴 69명이 희생된 날을 기려 매년 3월 21일은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기도 하다.
다문화, 다인종 사회가 이왕에 현실이 돼버렸기 때문에, 부족한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으면 된다는 식으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려는 위장된 너그러움이 아니라 '내 안의 인종주의'와 진정으로 마주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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