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더 넘게 흐른 2004년. 서울역에서 서대전역까지 KTX(고속철도)를 탄 아이뉴스24 기자의 시승기도 생생하다. “300㎞의 속도가 붙자 '나 살려라!'는 전봇대는 눈에 잡히지 않을 만큼 재빠르게 지나갔다. 서대전까지 가는 시간동안 시속 303㎞까지 내달았다.” 또 10년 뒤인 현재, 호남선 고속철도를 오송역이나 남공주역에서 찾는 사태가 곧 벌어진다. 궤도를 이탈하려는 것이다.
대전의 오늘이 있게 하고 천안, 논산을 키운 철도는 청일ㆍ러일전쟁을 전후해 깔렸다. 경부선에 이어 호남선, 충북선, 영월선이 속속 개통됐다. 그때 조상님 무덤 흔들린다며 철도에 반대하기도 했다. 테제베를 우리에게 판 프랑스도 괴물이 농사 망친다고 항거한 초창기가 있었다.
그보다 눈여겨볼 것이 수탈의 잔혹사다. 대전역 부지로 몇만 평 내놔라 하고는 보상은 안 해주는 식이었다. 부역에 강제 동원된 토착민들은 빚내서 숙식을 챙겨야 했다. '팥되나 먹을 데 신작로 나고 쌀되나 먹을 데 철로길 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이 땅엔 거지만 늘어간다' 가사가 등장한 배경이다.
철도는 또한 지역세의 각축장이었다. 노선이 죽산~청주~상주, 청주~영동~추풍령, 공주~논산~금산이 될 뻔하다 대전으로 그어진 과정은 아슬아슬하다. 1909년 대전과 조치원이 '엄청' 밀고 당긴 끝에 분기점이 대전으로 낙점됐다. 이제 오송역에 분기역을 넘겨줄 두 도시는 고속철도 서대전역 존치와 세종역 신설의 핵심 고민거리를 안고 있다.
장항성, 호남선, 전라선, 대전선 전용역인 서대전역은 도시의 성장판 기능을 했다. (사진은 6일 오전 11시 37분 서대전발 KTX. 작게 찍힌 인물들은 새누리당 당권 도전에 나선 김무성 의원 일행) 호남선 대전권 고속철도 이용자는 지금 하루 5000명을 넘는다. 기존 재래선의 50%라도 통과시켜야 한다. 논산 역시 고속철도 '훈련소역' 신설이 초미의 현안이다. 남공주역은 훈련소와 25㎞ 떨어져 있다.
호남선 대전 분기는 호남철도기성회와 대전원호회의 유치 운동의 산물이기도 했다. '새로 이룬 저자는 모두 일본집 이천여 명 일본인이 여기 산다네'라는 경부철도가처럼 대전 인구 2만3374명 중에 일본인이 7147명일 때도 있었다. 거류 일본인이 많은 이점에 상경위원(上京委員)까지 두고 유치에 전념했다. 서대전역도 대전군 유천면민의 역사 설립운동의 영향이 컸다.
대전의 중문(中門), 호남 관문인 서대전역을 잃으면 지정학적인 삼남 교통 요지의 지위는 급속히 약화된다. 민선 6기 호남 단체장들은 고속철 통과를 발전 호재로 반긴다. 잃는 쪽은 사회경제적ㆍ문화적인 악재다. 속쓰리게도 추억 속 철도가 시베리아, 유럽까지 진화하는 철도 중흥을 꿈꾼다. 고속철도 경유를 공약으로 앞다투며 위기의 서대전역을 구한다는 단체장, 정치인과 정당은 다 어디로 갔는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