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류각으로 접어드는 길. 커다란 바위에 '초연물외(超然物外)'라는 힘찬 암각글씨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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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한창인 칠월의 한낮! 계족산 자락에 위치한 옥류각에 올랐다. 대전시 대덕구 송촌동 선비마을 뒷길에서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지하통로를 벗어나면 제일 먼저 비래골의 570여년된 느티나무가 반긴다. 언제라도 넉넉한 그늘 한자리를 내어줄 듯한 의연한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주변 그늘 아래서는 직접 기른 갖가지 푸성귀를 들고 나와 팔고 있는 아주머니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네 고향 어머니 같은 모습이다. 옆에는 늘어지게 잠을 청하고 있는 큰 개 한 마리까지, 소박한 시골 마당 같은 풍경이다.
이곳을 지나면 요즘 한창인 개망초꽃과 주렁주렁 매달린 탐스러운 고추, 줄기를 맘껏 뻗어가는 고구마도 만날 수 있다.
드디어 산길로 접어든 듯한 느낌도 잠시! 맑은 계곡물소리와 함께 커다란 바위에 '초연물외(超然物外)'란 힘찬 글씨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동춘당 송준길(1606~1672)선생이 직접 썼다는 암각문이다. 세속의 바깥에 있고 인위적인 것을 벗어나 있다는 뜻. 잠시 바로 이곳이 세상 너머의 그곳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암각글씨에서 눈을 돌리면 바로 옥류각이 바라다 보인다. 물이 흐르는 가파른 계곡을 딛고 의연하게 서 있는 정자. 자연 그대로의 바위를 살린 정자. '옥 같이 맑은 물이 흐른다'는 뜻으로 당호를 붙인 옥류각은 송준길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던 2층 누각 형태의 건물이다. 정자는 앞면이 계곡 쪽으로 향하기 때문에 옆면으로 출입하도록 하였으며, 이 또한 자연경관을 살리려는 배려라고 보여진다.
어찌 이리 흐르는 계곡 위에 누각을 지을 생각을 하였을까? 보면 볼수록 주인장의 자연을 닮고자 했던 순수한 마음이 느껴지는 듯 하다. 한때는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겠지만 지금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와 산새소리, 짙푸른 녹음과 바위만이 정자와 어우러져 옛 벗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듯하다. 계곡물에 발 담그고 동춘 선생의 싯구 하나 읊어보고 싶어진다.
6월 하순이면 찾아온다던 장마가 올해는 유난히 더디기만 하다. 그래도 얼마 후면 또 다시 장마는 시작되고 이곳 계곡에도 시원한 물줄기가 넘칠 것이다. 대청에 앉아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를 들어도 좋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과 함께 시 한 수 읊을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윤정원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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