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미선 편집부장 |
정체불명의 짝퉁들이 도처에서 판을 치고 있다. 명품은 물론이고 사람까지 가짜가 넘쳐나 '진짜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는' 형국이다.
#옛날에도 짝퉁은 있었다.
명종실록에 의하면 1561년 황해도 순경사 이사증이 당대의 대도(大盜)인 임꺽정을 잡았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그러나 의금부에서 조사해보니 가짜여서 이사증을 파직했다. 뒷 이야기는 이렇다. 그들이 잡은 인물은 형인 가도치였고 이들은 임꺽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현상금과 출세에 눈이 멀어 가도치를 때려 죽이면서까지 진실을 덮으려 했지만, 발각되어 중형을 받은 것이다.
성공을 위해 감추고 포장하려는 위정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한다. 문득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서 대통령이 위로했던 '할머니 조문연출' 의혹사건이 오버랩된다.
#영화속 가짜도 있다.
2012년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돌파했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광해군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으로 자신대신 위험에 노출될 대역, 일명 '몸빵'을 찾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하지만 광해군은 독으로 인해 쓰러지고, 왕과 똑같은 외모에 흉내도 완벽하게 해내는 천민 하선이 조선의 왕 노릇을 하게 된다. 인간적인 가짜 왕 하선을 통해 '올바른 지도자상은 무엇인가'란 메시지를 던져 그해 대선을 앞두고 '광해의 정치학'을 배우기 위해 대선주자들이 줄을 서기도 했다.
진짜보다 더 나은 가짜도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영화속 이야기지만….
#2014년 가짜는 좀 더 황당하다.
총기난사 무장 탈영병 임모 병장이 생포된 이후, 병원으로 긴급 후송된 사람은 '가짜 임병장'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4일 대한민국의 수많은 방송들은 모포까지 쓰고 응급실로 옮겨지는 '가짜 임 병장 쇼'를 전국에 생중계 했고 환상 연기를 펼친 '가짜 임 병장'은 군 위생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황당한 시나리오는 누가, 왜 작성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군 당국은 “병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좁고 취재진이 집결해 있어 구급차가 들어가는 데 어려움이 있으니 가상의 환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강릉아산병원측 의견을 듣고 수용했다. 당시 임 병장은 혈압이 60~90㎜Hg 정도로 떨어지고 출혈이 계속되는 위급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아산병원 측은 “가상의 환자나 별도의 진입로를 언급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유도 알 수 없는데다 해명또한 거짓으로 드러나 국방부는 비난을 자초한 셈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군이 '가짜 임병장'을 만들면서까지 언론과 국민을 한꺼번에 속인 것은 부적절했다. 게다가 국방부가 임 병장이 자살시도 직전 작성한 메모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국방부가 희생자 유족들 핑계를 대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김관진 장관의 사과를 요구했다.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군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양새다. 이래서야 투명한 진상규명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흔히 카피제품이 넘쳐나는 중국을 '짝퉁천국'이라고 비아냥대지만 대한민국의 현실도 만만치 않다. 명품에 대한 욕망과, 그 욕망을 이용하는 욕망이 짝퉁을 만드는 법. 그래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은 오늘도 바쁘다. 가짜를 만들고 내세우고 열광하느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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