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교원시니어직능클럽 서부지역 이건용 본부장(사진 오른쪽)과 함께 공부하고 있는 조의찬 군. "선생님이 좋다"며 환하게 대답하는 조 군과 이 본부장을 보며 이 시대 '진정한 스승'의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
얼핏 보면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다정히 건네는 말 같지만 사실 둘은 사제지간이다.
조의찬(10ㆍ대전 서구)군이 대전교원시니어직능클럽 서부지역 이건용 본부장과 사제의 연을 맺은 것은 지난 2월 말.
조 군은 또래 아이들처럼 초등학교에 다니지 않고 이곳 사무실에서 공부를 한다. 조 군은 뇌에 물이 차는 희귀 질병을 가지고 태어나 4살까지 걷지 못했으나 외조모의 간절한 기도와 보살핌으로 꾸준히 재활치료를 한 결과 현재 한쪽 다리를 약간 절긴 하지만 걸을 수 있고 말투가 어눌한 것을 빼면 장애가 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표정이 밝다.
조 군은 초등학교 입학 당시 잘 걷지 못해 입학 시기를 놓쳤고 이 후 장애인학교에서는 기준미달로 입학이 거부되었다. 조군의 외조모가 동사무소에 비치되어 있는 대전교원시니어직능클럽의 안내문을 보고 문의하면서 조 군은 배움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 조 군은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수업을 받는데 선생님이 손수 지어주시는 점심을 함께 먹고 가족 이상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생활한다.
전국에서 한 곳 뿐인 대전교원시니어직능클럽은 퇴직한 교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평생교육학습을 위한 비영리교육기관이다. 서구지역 주민이라면 누구나 검정고시, 인성예절, 한자, 영어 등의 다양한 교육도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이건용 본부장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한 후 지금까지 '배움의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온 힘을 바치고 있다.
“우리가 가진 지식을 전달해 주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라 순수하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죠. 시간당 2천원을 받는데 밥 값은 됩니다. 허허허” 하고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는 이 본부장이다.
조 군의 수업은 다섯 명의 전직 교사들이 담임제로 진행하는데 이 본부장과 함께 주축이 되어 조 군의 교육을 맡고 있는 또 다른 교사는 42년간 교직에 몸담았던 허인행 전 교장이다.
“의찬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한글만 겨우 읽었고 수에 대한 것은 개념이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은 연산을 할 정도로 실력이 많이 늘어 대견하죠”라며 조 군에 대한 애정을 보이는 허 전 교장은 퇴직 후 1년을 중학교 순찰을 하는 무료 봉사활동도 했다고 한다.
오는 8월에 중입 검정고시를 앞두고 있는 조 군은 좋아하는 것을 묻는 질문에 “선생님요. 그리고 축구도 좋구요. 여기서 공부하는 거 재밌어요”라고 어눌하지만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이들이 입시만을 위한 교육에 내몰리는 삭막한 현실. 진정한 가르침을 주는 스승을 더욱 만나기 어려운 이 때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사랑과 배움을 나누기 위해 봉사하는 이들이 있어 마음이 놓인다.
이 본부장은 말한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의찬이처럼 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해 소외된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더 많이 와서 배울 수 있도록 주변에 널리 알려지는 것입니다.”
이지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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