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60여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아버지… 유해발굴 유족회가 나서려고 합니다

[김종현]60여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아버지… 유해발굴 유족회가 나서려고 합니다

2004년부터 유가족 이끌며 진실규명 돌입, 신원확인 218명 유가족만 국가배상금 받아 2005년 발족된 과거사정리위원회 해체 뒤 희생자 유해 발굴과 추모사업 모두 올스톱

  • 승인 2014-06-24 14:04
  • 신문게재 2014-06-25 9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중도초대석-김종현 (사)대전산내사건 희생자 유족회장

대전 동구 산내의 골령골이라는 골짜기에서 1950년 6월 28일 7월 17일까지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이 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 학살됐다. 비록 전시라는 비상 상황이었다고는 하나 국가가 좌익 전력이 있거나 의심된다는 이유로 법적인 절차 없이 살해한 불법행위였다. 그리고 60년이 흐른 2010년에서야 국가가 특별법으로 만든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당시 국가의 명백한 불법행위였다고 진실규명 결정을 했고 피해자와 그 유족의 명예를 일부 회복시켜줬다. 그리나 집단학살 64년이 흐른 지금까지 본격적인 유해발굴은 시작되지 않았고, 추모비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대전 골령골에서 아버지와 형, 오빠를 잃은 유가족들을 통해 6ㆍ25전쟁에 숨겨진 아픈 역사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김종현(사)대전산내사건 희생자 유족회장(77ㆍ사진)은 산내 학살사건을 연구하고 기록할 연구재단 설립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1950년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예비검속자들이 4㎞ 떨어진 대전 산내 골령골까지 끌려와 희생을 당한 뒤 64년이 흐르도록 제대로 된 발굴과 연구가 없었다. 또 2005년 발족한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10년 해체됐고, 뒤를 이어 민간인 희생자 유해를 발굴하고 추모사업을 맡기로 했던 과거사연구재단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진실화해위원회가 2010년 6월 '대전 골령골 집단학살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가 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와 보도연맹원들을 집단 살해한 것으로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다'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려 유가족의 명예는 일부 회복됐으나, 희생자 위령 사업과 유해발굴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김 회장은 “국가는 국민 통합을 이야기하지만, 적게는 2000여명에서 많게는 6000명까지 거론되는 민간인 학살지역이 그대로 방치되는 마당에 화해가 말로만 해서 이뤄지는 건 아니다”며 “명백한 불법행위에 따른 국가 배상금을 모아 유가족이 직접 재단을 만들어 기념사업과 유해발굴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내사건 희생자로 신원이 확인된 피해 유가족들은 2012년부터 국가를 상대로 배상소송을 진행해 지난달 대법원에서 배상 결정을 받은 상태다. 하지만, 희생자 본인과 그의 배우자 그리고 부모와 자식 등이 받을 수 있는 배상 총 금액은 1억3000여만원에 불과하다. 젊은 나이에 죽임을 당하고 그의 가족들은 연좌제에 묶여 수십년을 보낸 것에 비하면 배상액이 크게 낮은 것이지만, 이것도 진실화해위원회가 2010년 피학살자로 신원을 확인해준 218명의 유가족만 가능한 실정이다.

김 회장도 아버지를 골령골에서 잃었지만, '아버지'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50년을 보냈다. 김 회장의 아버지는 1949년 12월께 당시 외가집에 피신해 있던 중 경찰에게 붙잡혀 대전경찰서에 수감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판조차 받지 않은 미결수로 대전형무소에 재수감돼 7월 5일 골령골에서 희생자가 됐다.

그의 나이 열셋에 이유도 모른 채 아버지를 잃었지만, 누구에게 물을 수도 억울함을 토로할 수도 없었다. 또 골령골 학살의 그림자는 연좌제라는 그물이 되어 그를 따라다니며 학교 진학이나 취업에 번번이 걸림돌이 되었다. 집에는 시도때도없이 경찰이 들이닥쳤고 이를 견딜 수 없었던 어머니는 부산에 내려가 지내야 할 정도였다.

“당시에는 원망도 많이 했죠. 집안에서조차 대화를 조심히 하고 아버지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습니다. 언제든 골령골처럼 학살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가족들을 짓눌러왔던 것이죠. 그나마 나는 기술을 배워 그럭저럭 살아왔지만, 다른 유가족들은 배움의 기회도 잃고 하루하루 생계에 치이며 살아온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김 회장의 말이다.

이날 골령골에서 함께 만난 유가족 신순란(79)시인도 충남 공주에 살던 중 친오빠가 낯선 이들에게 끌려가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골령골에서 희생됐다.

신씨는 “오빠가 희생된 후에도 낯선 사람들은 집에 찾아와 가족 한 명씩 뒷산으로 끌고 가 총부리를 겨누고 위협을 했으며, 아버지는 아들을 찾겠다고 곡괭이를 들고 헤매셨던 기억이 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99년 미국에서 비밀 해제된 문서가 공개되면서 대전형무소 재소자 집단학살이 세상에 밝혀지자 본격적으로 유가족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의 도움으로 2000년 처음으로 30여 건의 학살 피해사례가 접수됐고 유족모임이 결성됐으며, 골령골에서 처음으로 위령제가 열렸다.

그러나 유족모임만으로 진실을 규명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대전교도소를 비롯해 경찰, 검찰, 국방부, 대전시 등 모든 기관을 상대로 행정정보 공개를 요청했으나, 이들 기관에서 돌아온 답변은 “관련자료가 없다”는 허탈한 말뿐이었다.

김 회장은 “2004년부터 유족회를 이끌기 시작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진실을 규명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며 “많이 알고 배우기 위해 전국에서 열리는 민간인희생자 위령제를 찾아다니며 같은 처지의 유족들을 많이 만났다”고 설명했다.

마침내 2005년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개정되면서 산내학살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작업이 시작됐고, 2006년 11월과 2007년 2월 두 차례 직권조사가 진행됐다. 결과적으로 당시 대전형무소 특경대 근무자의 목격담을 확보하고 일부 재소자명부, 유족 증언 등을 토대로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지고 피학살자 218명의 신원은 확인되는 성과를 거뒀다.

김종현 회장은 “역사에 숨겨진 비극과 아픔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것만으로도 억울하게 돌아가신 조상에 대한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말할지 모르나, 지극히 당연한 빙산 일부분을 밝혔을 뿐”이라며 “곳곳에 매장된 유골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이러한 비극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과제가 우리 세대에 남겨졌고 역량을 다해 헤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담ㆍ정리=임병안ㆍ사진=이성희 기자

●골령골 사건 경과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1950년 6월 28일 대전형무소 재소자 집단 학살 ▲1992년 2월 월간 '말' 통해 최초 보도 ▲1999년 10월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내 진상조사반 구성 ▲1999년 12월 미국 해제 비밀문서에서 집단처형 보고서 발견 ▲2000년 4월 산내학살 유가족 첫 모임 ▲2000년 7월 1차 산내학살진상규명 위령제 ▲2005년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진실 규명 신고 접수 ▲2006년 12월 대전형무소 사건 직권조사 개시 설명회 ▲2007년 7월 대전산내학살지 유골 발굴 개토제 ▲▲2008년 11월 임시유해 안치소 설치 시설사업 ▲2010년 4월 대전 산내사건 표지판 설치 거부 동구청 항의방문 ▲2011년 1월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법인 설립 ▲2012년 2월 희생자 유가족 배보상 소송서류 접수 ▲2013년 6월 대법원 희생자 가족에 배상 결정


햇빛 들거든 -유가족 신순란 시인

가야 할 길이라면 기꺼이 가겠노라

부모자식 뒤로하고 떠나려니

이보다 더 큰 죄인이 어디있으랴.

밝은세상 만들려 했건만

꺽이고 꺽여

짓밟힌 청춘

줄줄이 꽁꽁 묶여

불꽃 튕기는 탄알 가슴에 안고

중이접삼 피로 물들 때

가슴에 솟구치는 고동소리

왜이리

멈출줄 모르는가.

육신은 찢기고 찢겨 흔적이 없어져도

혼을 다해 사랑했던 내 조국은

나를 기억 하리라

죄라는 명목으로 묶어 두었던 많은 사슬들

세상에 햇빛들거든

묶은 죄 사슬 하나 풀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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