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이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 실제 담배연기는 4000여종의 화학물질로 이뤄졌고 69종의 발암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이물질들은 폐부 깊숙이 흡수돼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더 큰 문제는 간접 흡연으로 인한 폐해. 한 조사에 의하면 비흡연 여성 폐암환자 4명 중 1명은 간접흡연 노출이 원인이라고 한다. 어릴 때는 아버지, 결혼 후에는 남편의 흡연이 문제. 담배연기 한 모금 입에 댄 적 없는데 암이라는 질병과 대면했을때의 당혹감과 원망스러움이란. 담배가 공공의 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반면, 흡연자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금연정책이 가혹한 형벌과도 같을 것이다. 담배의 중독성은 웬만한 마약류보다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문난 애연가 프로이트는 스물네살부터 담배를 피웠고, 담배를 끊으려다 우울증에 걸려 코카인을 복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코카인에서 벗어나려 또 담배에 손을 댔고, 결국 구강암으로 숨졌다고 하니, 악마의 유혹이라는 비유가 그르지 않다.
곰방대와 찰떡궁합이 되어/ 할아버지가 몽롱하게 당했고/ 아버지도 똑같이 당했건만/나까지 넘어갈 줄이야// 예저기 사랑의 흔적 남겨놓아/ 애먼 마누라까지 바가지 긁게/ 싸잡아 이간질하는 이 가문의 철천지원수// 아들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씨도둑은 못하는 법이라서 미끈한 몸매로 까딱하면 너까지 넘보려 들 테니까// 내가 당해봐서 안다/ 한번 정을 주면 찰거머리 되어/ 평생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권오범·시인>. 애연가의 심경 묻어나는 시 한수, 끊고 싶지만 끊지 못하는 이유 절절하다. “식사후 커피는 독”이라는 정보를 접하고도 달콤한 유혹 뿌리치지 못하는 카페인 중독자로서 감히 그 심정 헤어려 본다.
10년간 2500원으로 묶여있던 담뱃값이 논쟁의 중심에 섰다. 세계보건기구의 담뱃세 인상 권고에 따른 정부의 인상 의지 또한 사뭇 강경하다. 흡연가들에게는 엎친데 덮친격. 한달 용돈 쪼개고 아껴얻는 끽연의 기쁨, 동료들 아이스 커피 폼나게 마실 때, 주차장 구석 한켠서 꿋꿋이 걸어왔을 애연가의 길, 최대 위기다.
이런 가운데 '담뱃값 얼마면 금연하겠나'하는 19세 이상 성인 남성 흡연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새삼 눈길을 끈다. 마지노선은 8965원. 연령이나 소득별로 큰 차이를 보였지만, 확실한 건 현재보다 적어도 3배는 더 올라야 금연할 생각이 있다는 결과다. 당분간 흡연인구 감소는 그리 기대할 일이 못될 성 싶지만, 축 처진 가장들의 어깨를 떠올리면 담뱃값 올라도 걱정, 안 올라도 걱정이다.
황미란·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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