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형무소 재소자 및 보도연맹원들이 집단 희생된 대전 골령골에서 고정렬씨가 제사를 올리고 있다. |
이날 골령골에 큰 절을 올린 고 씨는 한국전쟁이 터진 후인 1950년 7월 7일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 이곳에서 처형돼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가 대전형무소에서 끌려나와 불법적으로 처형된 수많은 희생자 중 하나였고, 골령골에 묻혔다는 걸 안 2007년 이후 고 씨는 매년 음력 기일마다 이곳을 찾는다.
고 씨는 “전쟁 중에 정치범 재소자라는 이유로 판결도 없이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희생됐고 매장됐는데 지금까지 발굴도 하지 않고 추모비 하나 없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1950년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예비검속자(미리 잡아 둠)가 집단처형되고 매장된 대전 골령골이 64년째 잠들어 있다.
골령골은 한국전쟁 발발 후 가장 먼저 국가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벌어진 곳이고, 단일지역 최대 규모의 희생자가 만들어졌다는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2010년 진실규명 결정문에 따르면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 사이 세 차례에 걸쳐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예비검속자들이 이곳에서 법적인 절차 없이 희생됐고, 그 규모는 최소 1800여명 이상이다.
여순사건과 제주4·3사건, 그리고 정치사상범과 징역 10년형 이상 일반사범을 포함해 전쟁 중 서울을 비롯한 경인지구 형무소에서 풀려났다가 다시 검거된 재소자와 다른 형무소에서 대전형무소로 이감된 충남지역 보도연맹원들이 이곳에서 군과 경찰에 의해 희생되고 매장됐다.
최소 1800여명의 민간인이 집단처형·매장된 현장인 산내 골령골. 2007년 첫 발굴이후 추가조치가 없어 수풀이 무성한 채 방치돼 있다. |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가 좌익 전력이 있거나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와 보도연맹원들을 법적인 절차 없이 집단살해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결정한 바 있다.
이러한 상처를 품은 골령골은 현재까지 추가발굴은 없었고,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만든 비석 하나가 역사 현장을 설명할 뿐이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유해발굴팀장을 맡았던 노용석 부산외대 교수는 “대전의 골령골은 발굴 당시에도 중요한 매장지의 토지 소유주와 합의되지 않아 발굴하지 못한 곳이 여럿 있었다”며 “매장지에 농사가 이뤄지고 건축공사도 이뤄져 지형변화가 예상돼 국가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곳”이라고 말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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