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영광씨가 악기제작에 열중하고 있다. |
이른 나이에 전통악기 제작이라는 쉽지 않은 길을 택한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초등학교 때 방학이 되면 열흘에서 이십 일 정도 형과 함께 작은 아버지의 일을 돕고 용돈도 받았어요. 주로 나무에 그리는 일, 구멍 뚫는 일을 했지요.” 어린 시절, 작은 아버지 공방에서의 추억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인하공전을 졸업한 후 일본계열회사와 삼성에도 입사했었는데 월급은 많았으나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해보려고 그만두었다고 한다.
평범한 샐러리맨이나 공학도로서의 길 보다 전통문화 계승이라는 평탄치 않은 길을 택하게 된 것이다.
그 길을 가고 있는 지금, 후회는 없는지 물어 보았다. “맘이 편하고 공기도 좋아요. 다른 일보다 나은 것 같고요. 요즘 집집마다 서양 악기는 있어도 가야금은 없잖아요. 이런 일을 하니까 우리 집엔 악기들이 있어요. 9개월 된 쌍둥이 딸들 앞에서 동요를 해금으로 가끔 연주하는데, 그 시간이 제일 행복합니다.”
작은 아버지이자 선생님인 표태선씨와 좁은 공방에서 같이 지내면 불편하지 않는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다른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들을 말하지만 자신은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시간이나 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반듯하게 살아온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본 작은 아버지는 흠잡을 데가 없었어요. 성격이 완벽주의라서 좀 그렇지, 무형문화재가 된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남들은 작은 아버지가 어린 나이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서 빽 있냐, 돈 썼냐 하지만요.” 아버지나 작은 아버지처럼 살고 싶다는 표영광씨. “잘 배워서 좋은 악기 만들고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날이 있을 거고, 꿈도 이룰 날이 오겠지요. 묵묵히 열심히 하다보면요.”
가야금을 매만지며 굳은 다짐을 해 보이는 그를 보니 든든하고 믿음직스럽기 그지없다.
정애령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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