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관찰 규정을 위반하거나 보호처분 기간에 또 비행을 저질러 소년원에 가야 할 처지에 놓인 비행소년 7명이 지난 2~11일 대전가정법원이 마련한 '로드스쿨' 프로그램에 참여, 지리산 둘레길 230㎞를 걸으며 자신을 성찰하고 미래를 설계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대전가정법원 제공 |
A군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는 이혼했고 A군은 조부모가 키웠다.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체벌이 잦아 지금도 저항감이 크다. 친모와는 가끔 연락하지만, 애착관계는 없다. 중학교 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저항감으로 무단결석을 하고 가출 후 여러 범죄를 저질렀다. 소년보호처분과 징역형 등을 받은 후에도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범죄의 늪에 빠져 구속되기도 했다.
A 군 같은 이들을 보호소년이라고 부른다. 범행 후 보호관찰을 받는 기간에 또다시 범행을 저질러 소년원에 들어가기 전에 법원의 심리를 받는 청소년이다. 소위, '문제아 중의 문제아'다. 웬만한 교육은 통하지 않아 대부분 '포기'하고 방치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청소년들을 한번 제대로 바꿔 보겠다고 하는 실험적 시도가 대전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른바, '청소년과 함께 걷는 지리산 둘레길 500리, 로드스쿨'로, 외부에 의한 외적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내적강화를 통한 새로운 교정복지 프로그램이다.
로드스쿨은 소년들에게 자기통찰, 성숙, 자긍심, 책임감, 건설적 사고 등을 함양(내적강화)하게 해 재비행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프랑스 쇠이유협회(Seuil Association)가 다년간 진행해온 걷기 프로그램으로 탁월한 소년교정 효과가 확인되고 있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전가정법원(법원장 손왕석)이 전국에서 처음 시도했다. 지난 2일부터 11일까지 지리산 둘레길 230㎞를 걸었다. 보호소년 7명과 이들의 멘토인 대전성공회 나눔의 집 소속 청소년 관련 단체에서 근무하는 현장 실무자들이 동행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7시부터 걷기 시작해 오후 6시까지 식사 때를 제외하고는 걷기만 했다. 저녁에는 모여 대화와 상담 등 진솔한 시간을 보냈다. 하루 최대 30㎞의 강행군이었다. 한 보호소년은 요로결석으로 복통까지 심했지만, 진통주사까지 맞으며 완주할 정도로 의지가 강했다.
소년시절 비행으로 구속된 적이 있는 변호사는 격려차 방문해 삼겹살을 구워주며 소년들에게 연락처를 주면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동행한 멘토들은 어려운 형편에서 출산과 결혼을 앞둔 한 소년의 긍정적인 삶의 의지를 격려하기 위해 격려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2008년 고교 자퇴 후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가출한 후 택배, 휴대전화대리점, 화장품 판매원 등의 고된 일을 해온 이 소년은 16일 가정법원에서 열린 해단식에서 올해 10월 출산을 앞둔 여자친구와 가정을 이루겠다고 했다.
중학교 때 태권도대회 군 대표로 활약하다가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가출한 후 꽃게잡이 어선과 고깃집 등을 전전했던 또 다른 소년은 군대에 입대하기로 하는 등 보호소년들은 해단식에서 로드스쿨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과 목표를 언급했다.
프로그램을 총괄한 대전청소년드롭인센터 소장 이계석 단장은 “가정환경과 성장배경 등이 불우해 비록 범죄의 늪에 빠졌었지만, 짧고 강렬했던 로드스쿨을 계기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라며 “로드스쿨이 더욱 확산돼 방치되고 소외된 청소년들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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