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복 극작가, 꿈실현 아카데미 대표 |
미생(尾生)은 춘추전국시대 노나라 사람이다. 융통성이 전혀 없는 우직한 청년이다. 그의 일화는 이렇다.
어느 날 다리 밑에서 애인과 만나기로 약속해놓고 다리 밑으로 나가서 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약속 시간에 나오지 못했다. 때마침 소나기가 억세게 내려 다리 밑에 물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생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약속 장소를 떠나지 않고 다리 기둥에 매달려 죽고 말았다. 사기(史記)의 소진열전(蘇秦列傳)이나 장자(莊子)의 도척편(盜 篇), 전국책(戰國策)의 연책(燕策), 그리고 회남자(淮南子)의 설림훈편(說林訓篇)에도 등장하는데, 사기의 소진열전에서만 미생(尾生)의 행동을 신의(信義)로 해석하고 그 이외의 책에서는 '작은 명분에 집착하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우온달은 우리나라 이야기로 어린 학생들에게 영웅으로 회자되고 있고, 미생은 노나라이야기로 정치인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사기의 소진열전에 기록된 미생(尾生)의 행동을 예로 들어 아전인수의 논리를 펴고 있어 답답하기 짝이 없다.
몇 년 전 세종시 수정안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을 때 한나라당 의원들끼리 미생의 죽음에 대해 해석을 달리했다.
세종시 수정안을 찬성(세종시로 행정수도를 옮기지 말자)하는 모 의원은 미생이야말로 작은 명분에 집착하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평가했고,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는 다른 의원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여인보다는 약속을 지킨 미생을 옹호하며 미생은 목숨을 잃었지만 후대에 귀감이 됐다고 하며 상대편 의원을 격렬하게 비판했었다.
6·4지방 선거에서도 야당의 어느 대표가 미생을 끌어와서 상대편 공격용으로 이용했다. 4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기초단체 무공천'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면서 “지금 박대통령께서는 미생의 죽음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국민들과 약속한 것이니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자신의 입에는 무엇이 묻어 있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도 정치판에 뛰어들었으니 자신의 입에 묻은 것이 무엇인지 알 리가 없는 것이다. 논리로 밝혀보자.
미생은 융통성이 없고 창의력도 없는 사람이다. 그가 오늘날 살아있다면 '트리즈(TRIZ)'에 대한 공부부터 해야 될 사람이다. 트리즈란'Teoriya Resheniya Izobretatelskikh Zadach'이라는 러시아어에서 첫 글자만 따서 만든 말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말한다.
미생처럼 창의적으로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우기면서 다리 난간을 붙들고 죽어가는 인간이라면 그와 함께 사는 아내와 가족은 얼마나 불행할 것이며 그가 민족의 영도자라면 그를 바라보는 국민들 마음은 얼마나 답답할까. 국내 정세는 시시각각 변하고, 국제 정세도 초음속으로 변하고 있다. 어제의 우방이 오늘의 원수가 되고,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우방으로 변하고 있는데 어제의 약속을 오늘에도 고집할 수 있겠는가? 정치인들은 이것만은 알아야한다. 환경이 변하면 약속도 변해야 된다는 것을.
6·4지방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이나 교육 수장들은 엄청난 공약(公約)들을 쏟아 놓았다. 어떤 이는 초등학교 여행비를 국고로 지원해준다 하고, 또 다른 어떤 이는 보육교사를 공무원화하겠다 했다. 국고(國庫)를 열어보면 1000조에 육박하는 빚 문서만 있다하는데, 북한에서는 핵으로 위협하고, 중국과 일본은 우리나라와 국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는데, 무슨 돈으로 핵위협을 막고 국토 분쟁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공약(空約)을 일삼는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겠다. 미생의 죽음을 당신도 지킬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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