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문화마당은 문화재청 '문화유산 방문교육' 주관 단체로 선정되어 2006년부터 현재까지 대전지역 초. 중등학교를 방문하여 대전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문화유산 방문교육에서 실시되는 교육주제를 바탕으로 대전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문화유산 속으로 한걸음 더'를 연재합니다.<편집자 주>
▲ 둔산 선사유적지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한 곳에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발굴된 곳이어서 의미가 크다? 대전 용호동유적지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 슴베찌르개(왼쪽 2점)와 양끝찌르개<오른쪽 작은 사진>?
중도일보 DB?한남대 중앙박물관 도록 |
우리의 먼 조상들은 산과 강 사이를 누비며 돌도끼를 들고 사냥감을 찾기도 하고, 불을 피워놓은 동굴 안에서 짐승 가죽을 입으며 지내기도 하고, 열매를 따거나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살다가(구석기), 조금씩 지혜를 갖게 되면서 움집도 짓고, 농사도 짓고, 토기도 만들었다(신석기). 사회가 복잡해지고 농사 등으로 수확이 생겨나면서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이 나오게 되고, 급기야 족장이라는 막강한 힘을 가진 지배층이 생겨나 청동기를 지니며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된다(청동기).
이들이 이 땅을 주인삼아 살던 때를 우리는 선사시대라고 부른다. 글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이므로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은 없지만, 그 시대의 흔적들이 있기에 우리는 당시의 생활을 가늠할 수 있다. 켜켜이 쌓인 세월 속에 묻혀 있던 유물이나 유적들이 세상에 드러나면, 조각 퍼즐처럼 끼워 맞추고 연구하면서 그때를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 할 만큼 긴 시간이었던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은 우리가 딛고 있는 이 곳 대전 땅에서 어떤 문화를 꽃피우며 살았는지 살펴보자.
▲구석기시대=우리나라 구석기는 70만년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대전에서는 용호동 유적이 가장 오래된 시기로 약 10만년 전으로 추정된다. 1999년 대전 석봉정수장을 만들면서 발견되었고, 한남대학교박물관에서 2001년까지 총 세 차례 발굴 되었는데 4개의 구석기시대 문화층이 조사되었다.
발굴된 석기는 찍개, 밀개, 긁개, 찌르개 등이 있으며 당시 사냥을 위해 최고 기술로 만들었던 슴베찌르개가 발굴되기도 했다. 이외에 1991년 둔산 신시가지 개발 때 둔산동 유적지를 찾아냈으며, 구즉동, 용호동, 노은동, 용산동, 대정동 등지에서 구석기시대 흔적이 발견되었다.
▲신석기시대=대전의 신석기 유적은 약 1만년 전 시작되었으며, 갑천을 중심으로 한 둔산동, 송촌동, 상서동, 관평동 등지에서 나타난다. 특히 둔산지구 택지개발 중에 발견되어 충남대학교 박물관이 발굴한 둔산동 유적은 구석기와 신석기, 청동기 유적이 한 곳에서 발견된 의미 있는 곳인데, 13기의 집자리 유적과 함께 다양한 유물들이 나왔다. 곡식을 담는 빗살무늬토기, 농사를 지으며 땅을 파는데 필요한 돌보습, 채집한 열매를 부수거나 딱딱한 껍데기를 까는데 썼던 갈돌, 고기잡이에 쓰였던 그물추나 어망 등의 유물들이 발굴되어 그 시대의 생활모습을 짐작케 한다.
이상으로 대전의 선사시대 중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를 알아보았다. 다음 회에는 대전 선사시대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청동기 시대', 괴정동 유적지와 '농경문청동기' 등에 대해 알아보겠다.
10만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아득한 먼 옛날부터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들을 우리는 다 알 수는 없다. 조심스레 추측하고 찾아낼 뿐이며 아직도 많은 이야기들은 땅 속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들을, 그리고 수없이 많은 세대와 시기를 거쳐 만들어진 오늘의 이야기들을 후세들에게 전해 주는 것, 이것이 우리 할일 일 것이다. 시간에 쫓겨 바쁘게 종종 거리게 될 때, 왜 나만 힘드냐고 푸념하고 싶을 때, 그럴 때 우리가 딛고 선 이 땅에서 10만년 또는 몇 만년 전부터 고단한 삶 속에서도 행복을 찾으며 살아갔을 그 누군가가 있었다는 걸 기억해 보면 어떨까? 알고 보면 이 삶들은 광활한 대지에 쌓인 흙먼지 하나 같은 것인데….
한소민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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