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의화 문화독자부 부장 |
오랜 군사정권치하에서 개인은 집단의 한 부속물에 불과했고 집단의식의 하나로 집단적으로 구타당했다.
집에 돌아 와 온 몸에 시퍼런 멍이 든 고통과 억울함을 부모에게 호소할라 치면 되돌아 오는 말은 한결같았다. “다, 선생님이 널 위해서 그런거야!” 사실 부모의 반응이 이럴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예 구타의 흔적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을 뿐이다.
스스로 쓸모있는 존재라는 '자기 효능감'과 주체성은 거대한 총화, 단결, 집단, 권위에 짓눌려 숨을 못 쉬었다. 이러한 일그러진 청소년기의 초상은 성인, 심지어 삶의 황혼인 노인이 되서도 스스로의 존재감과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다.
열사의 땅 '싸라비아'(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살인적인 더위와 모래폭풍을 이겨내며 노동하고 가족과 생이별 뒤 독일 탄광의 광부로 간호사로 열심히 살았고 베트남에 가서 목숨을 걸었고 청계천, 동대문에서 하루 20시간씩 일해서 가족을 건사했으면서도 '나랏님 덕분에 이 만큼 살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 만큼 살게 된 것도, 보릿고개를 넘은 것도 당신과 당신 부모의 처절한 노동의 덕분인데도 말이다.
나랏님이, 선생님이, 부모님이 있으니 나는 단지 몸을 맡기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이라는 질서가 뼛속까지 스며있다. 그러한 지배질서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면서 탐욕스럽게 권력과 경제적 잇속을 차린 이들이 나쁜 것이지만, 먹고살기 바빠서 세상의 질서와 의도에 대해 의문조차 품지 않고 살아 온 것 또한 안타깝다.
세월호 참극의 책임을 묻고자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가만히 있으라'는 역설적인 침묵행진을 하다가 경찰서 유치장에서 성년을 맞이한 아들에게 “여러가지 핑계로 분노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길들여진 어른들을 대신해 차가운 유치장에서 이틀을 보내는구나”는 아버지가 쓴 편지글이야말로 굴절된 과거와 타협해왔다는 자기 고백이며 제자리를 찾은 현실인식이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한국 페리의 재앙을 처음 알린 것은 겁에 질린 소년이었다. 학생들 대다수는 객실에 남아 기다리라는 선내 방송을 따랐다가 희생됐다. 학생들은 연장자의 지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는데, 위계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그것이 관행이며, 그들은 복종의 대가로 목숨을 지불했다”고 보도했다.
얼마전 한국을 찾아 '시민의 안전과 국가'로 주제강연한 프랑스의 세계적인 석학 기 소르망(Guy Sorman) 교수는 세월호 참사 요인 가운데 학교 선생님의 지시 없이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복종을 강요당했던 문제점도 일부 있었다는 지적과 함께 창의성 대신 수동성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유교적인 교육방식 때문에 학생들이 선실 안에 머물게 돼 피해가 커졌다고 말했다. 무고한 국민이 생명을 잃은 것뿐만 아니라 사고에 대처하는 정부 당국의 대응 방식과 대처 능력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는 점에서 우발적인 사고로 볼 수 없다며 중앙집권화한 정부 체계, 상명하달 방식의 의사소통 구조, 시민사회의 역량 부재, 유교적인 교육문화, 부패를 낳은 제도의 허점, 국민 안전을 도외시하는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주된 요인들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정치적'으로 현 정권에게 국가개조의 기회를 주거나 대통령 구하기를 했거나, 무능하고 무책임한 현 정권에게는 안전한 국가 미래를 맡겨둘 수 없어서 했거나, 각자 가만있지 않고 투표한 결과가 나왔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서로 다른 의미에서 '가만히 있지 않고 투표했던' 2014년 6월4일의 결과에 대해서는 부디, 후회와 분노로 가슴칠 일 없기를….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