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기성 논설위원 |
#그는 '한국의 기독교와 불교 등 종교와 문화에 박애의 바탕인 후함(generosity)의 전통이 있는데 이제 박애로 사회적 연대를 복원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할 단계에 돌입했다'고 강조했다. 기 소르망의 이 같은 인터뷰 내용은 자신의 저서와 관련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나눔 실천과 박애적 기부 활동을 강조하는 가운데 나온 말이기는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 내재된 문제점을 되짚어볼 때 결코 과장된 진단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 소르망이 진단한 '인정사정없는' 한국의 잔혹사(?) 사례를 살펴보자.
# 잔혹사 장면 1='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한다.' 대한민국을 울린 안산 단원고 2학년 신영진(16)군이 침몰하는 여객선 세월호에서 어머니 장미자씨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다. 배가 바다 속으로 침몰하는데도 기내 방송에는 밖으로 대피하라는 말은 없고 그저 '가만히 있으라'는 말뿐이다. 탑승객들을 배안에 남겨둔 채 이준석 선장과 몇몇 승무원들은 탈출을 감행한다. 결국 세월호 선장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구속된다. 잔혹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세월호의 실질적인 선주인 유병언은 국민 앞에 나와 무릎 꿇고 죄를 뉘우쳐도 시원찮을 판에 탈주범 신창원 모양새로 도피행각을 펼치고 있다. 5억 원의 현상금까지 붙은 몸이 되는 바람에 현상금을 노리는 전문 꾼들도 군침을 흘리며 그의 뒤를 쫓는다는 이야기다. 희화화까지 돼버린 잔혹사인 것이다. 4일로 세월호 참사 50일째인 팽목항에는 여전히 시신을 찾지 못한 16명의 실종자 가족들의 한 맺힌 슬픔과 오열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 잔혹사 장면 2=교육감 자격 논란을 불러일으킨 딸의 글에 음모론을 제기하며 공작정치 운운하는 고승덕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모습은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을 착잡하게 하고 있다. 딸과의 논쟁에 대한 진위여부에 대해 국민들은 관심조차 없다. 다만 '딸바보'라는 말을 들어도 시원찮을 텐데 '딸바보'는 고사하고 '아빠의 어떤 무관심과 비정함이 딸의 가슴에 그토록 아픈 상처를 입혔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이 사태를 접하는 국민들의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다. 고승덕 후보는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도 과거의 장인이었던 고 박태준 포스코 회장까지 들먹이며 변명으로 일관했다. 논란을 불러일으킨 딸에 대한 미안함에 고 후보의 사퇴를 예견했던 상당수 국민들은 그의 선거 출마욕심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다. 게다가 고승덕 후보의 변명이 음모론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돼 가고 있다.
# 잔혹사 장면 3=6·4지방선거 현장에는 말 그대로 선거운동의 병폐가 고스란히 내재돼 있다. 서울시장 후보들 간에 펼쳐졌던 공방만 살펴봐도 그러하다. 새누리당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는 한동안 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 후보의 부인문제를 거론하며 의문을 제기했다. 박원순 후보의 부인이 외부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사실만을 둘러싸고 억지 의혹을 제기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박원순 후보의 부인과 유병언 일가와의 연관설까지 제기, 법적 싸움으로까지 번질 조짐이다. 네거티브 공방은 비단 서울시장 후보들만의 모습은 아니다. 충북지사 자리를 둘러싸고 펼치는 친구사이의 선거판 경쟁 또한 한국 선거문화의 잔혹사를 대변해주고 있다.
# 드디어 6·4지방선거의 날이 밝았다. 여전히 인정사정없이, 네 편 내편으로 갈리고 20대, 60대로 갈린 채 후보자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저 내편에 도장 꾹꾹 눌러 찍을 것인가. 아니면 비록 내편이 아니더라도 우리 고장의 미래를 짊어질 만한 인재에게 한 표를 행사할 것인가. 오늘 하루 유권자 당신의 현명한 선택만이 남겨진 상태다. 기 소르망의 진단에서 볼 수 있듯 부의 축적만을 추구하며 이어져온 적폐(積弊)의 잔혹사를 오늘 하루 선거문화부터 탈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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