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명환 유성한가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
이런 슬픔은 당연한 반응임과 동시에 헤어짐을 극복하고 치유하게 하는 마음의 약이기도 하다. 고통스러운 일에 대해서 아파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 반응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병이 된다고 이런 감정들도 지나치면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상한 마음은 방치하면 병이 될 수 있다. 이제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힘들어 하고 슬퍼한다. 혹시 우리의 마음이 애도의 반응을 넘어서 자연적 치유를 하기 어려운 상황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어떤 것이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살펴보고 어떻게 극복할 지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정신과 의사로 살면서 심한 정신적 외상으로 황폐화된 마음으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목격하게 된다. 인간의 육체는 한계에 달하면 손상을 입게 되고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어 병에 이르게 되는 데 이런 일은 마음에도 예외가 없어 견뎌낼 수 있는 한계를 넘는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뇌의 기능이 떨어지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게 된다. 이때 나타나는 현상들은 2~3주 이상 지속되는 불면과 악몽, 집중력 저하와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장면들의 회상들이다. 방치할 경우 일상에서의 사회적 기능이 떨어지고 자기 비하와 자책감들에 시달리면서 만성적인 우울증으로 진행되기 쉽다.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고 객관적으로 현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이런 상태를 벗어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선 어떻게 해서 이런 고통스러운 상태가 발생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예측할 수 없었던 재난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의 뇌는 그 사건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발생한 사건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상식이나 신념을 벗어나는 정도의 규모이거나 극도로 피하고 싶던 고통스러운 일을 상기시키는 경우에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쉽게 적용할 수 있었던 합리적인 생각, 유연한 사고가 작동하지 못하게 된다. 대신 유아기에 사용하는 원초적인 정신기제가 작동하게 되고-이런 상황을 퇴행이라고 한다-따라서 왜곡된 상황 파악과 인식이 일어난다. 잘못된 상황인식은 병적 상태로 인도하는 지름길이다. 따라서 평소에 발휘하던 합리적 사고, 유연한 생각을 회복시키고 작동시키는 것이 병을 피할 수 있는 필수 조건이 된다. 어떤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을 지 도움이 될 몇 가지 생각을 소개하려고 한다.
능력은 한계가 있다.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은 영화에서나 존재했다. 하지만 퇴행을 유발하는 재난 상황에 맞닥뜨린 경우에는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이런 생각은 과도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자칫 양심적이고 훌륭한 생각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내가 설령 세월호에 타고 있었고 선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어 사고를 예측했다고 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구조활동에 참여했던 많은 분들이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 분들은 존경 받을 만 하고 그런 분들 덕에 그나마 이 사회가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터뷰에 응한 몇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훌륭했던 행동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자책하고 괴로워한다. 난 진심으로 전해주고 싶다. 당신들은 훌륭했고 존경 받을 자격이 있다고 그러니 이제 자책을 멈추고 자신을 용서 하라고…. 자책을 멈추고 스스로를 용서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패배감, 자책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 확신이 떨어져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기 어렵다. 따라서 다시 자기 비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일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자신의 판단과 생각을 점검해 보길 권한다. 내가 정말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혹시 내가 내 능력과 힘을 과도하게 평가하는 건 아닐까? 이런 질문을 던지고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과도한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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