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
SNS를 통해 연결될 수 있는 친구의 수가 증가하면서 나타난 현상 중의 하나는 친구에 대한 정의가 점점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친구는 나와 거의 모든 것을 함께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공부도 함께하고, 영화도 같이 보고, 술 마실 때마다 불러내고, 싸움을 할 때도 같은 편이 되고, 심지어는 화장실도 함께 가야 하는,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대상이 친구였다. 따라서 친구라는 자격을 획득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과정이었다. “포도주와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라는 프랑스의 격언처럼 친구가 되려면 서로의 다양한 모습을 이해할 수 있어야 했고, 이를 위해 오랜 시간에 걸친 상호이해의 역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SNS를 통해서 수많은 친구와의 연결이 가능해지면서 한 명의 친구와 공유하는 목표나 활동의 수는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영어공부를 함께하는 친구가 따로 있고, 주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따로 둘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서로 친구가 되기 위해서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은 크게 줄어들었다.
친구와 공유하는 목표와 활동이 적어졌기 때문에 친구와의 관계를 끊기도 무척이나 쉬워졌다. 영어 공부를 함께하던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된다. 문제는 나한테만 관계의 단절이 쉬워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방도 마음만 먹으면 아주 쉽게 나와의 관계를 단절시킬 수 있다.
따라서 SNS로 나와 연결된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기대하는 최소한의 서비스를 제공해줘야 한다. 그 결과 SNS로 연결된 친구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리고 이 친구들을 친구로 유지하려는 동기가 강하면 강할수록, SNS에 몰두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SNS에 몰두하더라도 상대방은 아주 작은 것만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과거에 소수의 친구에게 쏟았던 에너지를 요즘은 다수의 SNS 친구들에게 배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SNS를 통해 연결된 친구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친구간의 관계의 강도는 약화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친구는 많아졌는데, 자신에게 진정한 친구는 없다는 공허한 느낌을 받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큰 문제는 온라인 공간의 친구관계에 몰두하다가 정작 현실의 중요한 관계를 손상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이어지지 않고 갑자기 침묵이 흐를 때처럼 난감한 상황도 없다. 침묵이 주는 불편함이 생각보다는 크기 때문에 누군가는 침묵을 깨기 위해서 새로운 화제를 던지게 된다. 그리고 그 덕분에 사람들은 다시 대화하게 된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로 사람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을 전혀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대화의 양은 크게 줄어들었다. 커피숍이나 식당에 가면 서로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각자 자신의 스마트폰에 빠져있는 가족이나 연인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 앞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앉아 있지만, 이들이 대화를 나누면서 감정을 주고받는 대상은 스마트폰 안에 있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맺는 공간이 온라인상으로 옮겨가면서 정작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현실의 관계는 너무 소홀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이 주는 장점은 너무나 많다. 하지만 마음이 연결된 관계를 얻기 위해서는 가끔은 스마트폰의 연결을 끊고, 따뜻하게 상대방의 눈을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때 연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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