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이나 남사당패는 생계를 위해 춤을 춘다. 주말 밤 아줌마 팬들 틈새에서 숨죽이며 본 영화 <인간중독>에서 송승헌(김진평 역)이 임지연(종가흔)과 추려고 배운 작업용 왈츠는 생활형 춤이다. 선거유세 때 곁들이는 율동도 목적성을 띤 생활형 춤의 일종이다. 그런데 감정과 신념을 표현하기 위한 춤, 간단한 지지 호소의 율동마저 금기행동이 되고 있다.
선거문화가 바뀌어서가 아니다. 음향과 율동 자제 분위기 때문이다. 로고송 잘못 틀었다가 구설에 오른 충북의 경우처럼 엉뚱한 쟁점이 구도, 정책, 인물을 덮어버리는 '주의 전환의 오류'를 낳기 쉬운 게 이번 선거다. 그래서인지 모두 510명의 당선자를 가리는 충청권을 봐도 제자백가의 백가쟁명 같은데 겉은 절제돼 있다. 일부 연예인 동원 기미가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대세는 묵언 수행하듯 절만 꾸벅하는 선거운동이다. “조용해서 좋다” 하고 돌아서기에는 왠지 미흡하다. 팥소가 빠진 단팥빵처럼 싱겁다. 그도 그럴 것이 '돌아다니면서(遊) 달래는(說)' 유세의 2500년 된 오랜 전통이 식고 있다. 손자병법의 손빈, 합종연횡책의 장의와 소진, 왕도를 부르짖은 맹자도 유세를 했다. 과거제도가 생기기 전, 유림들이 제후에게 선택받기 위해 계책을 밝히는 오디션이 바로 유세였다.
유세가의 대표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공자다. 공자는 위, 송, 정, 진, 채 등 제후국을 14년간 주유천하하며 유세했다. “무엇 때문에 허둥대며 돌아다니나? 말재주를 부리지는 않는가?”라는 미생묘(微生畝)의 빈정거림도 유세 중에 얻어들어야 했다. 공자는 정치적으로 선택받지 못했어도 만세의 사표가 되는 내공을 유세라는 오디션을 통해 얻었다. '산다는 것은 과정의 연속이고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할 수 있지.'
이런 생각에 동조하기에 나이트클럽 홍보 차량을 닮은 유세차량이 아직 반가운지 모른다. 바로 저 위쪽 사진이 심야에 유세차량을 제작하는 광경이다. LED나 프렉스 간판 등은 빼고 기호, 후보, 슬로건을 알리는 용도가 대부분이었다. 깜깜한 천변에서 희미한 가로등에 의지해 제작하는 현장이어서 사진 상태가 나쁘지만 기록성에 충실하게 위해 그대로 담기로 했다.
저걸 후보가 타고 누빌 일은 사실 별로 없어 보인다. 중앙당의 율동 금지 지침까지 내려 아마 용도의 무덤에서 잠들 것 같다. 그럼에도 관직을 얻고자 수레를 타든 당선되려고 유세차량을 타든 그 과정이 중요하다. 선출직 관운인 편관(偏官) 운과 관골(官骨)에 달렸다고 역술가들은 말할 테지만 후보 명운을 가르는 절대자는 유권자다. 게다가 '여론조사의 무덤' 충청권, 상황과 이슈에 따라 그네 타듯 투표하는 '스윙보터'인 대전의 유권자들이 곱고도 미울 것이다. 음향과 율동이 거세된 선거라 더 답답할 것이다.
속이 탄 주요 정당 지도부는 공자가 위나라를 유세의 시작점으로 삼았듯이 첫 선거유세 지역으로 정치의 중원(中原) 충청권을 골랐다. 팁을 하나 주자면, 이런 지역일수록 모자란 1%가 99%를 무용하게 만들고 1%의 디테일이 결과를 바꾸기도 한다. 100-1=0, 100+1=200이 통하는 세계가 승자독식 선거판이다. 공자 시대와 지금의 유세는 크게 보면 비슷하다. 제후들을 설득하느냐 민심을 설득하느냐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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