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교 교수 |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에 닉슨 미국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1년에는 168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뉴스 오브 더 월드'라는 영국 신문이 폐간했다. 모두 도청사건 때문이었다. 2011년 한국의 KBS 기자 한 사람은 야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 회의를 도청했다는 혐의로 검·경의 수사를 받았다. KBS 기자의 도청 의혹 사건은 결과적으로 흐지부지되었지만, 사건이 '흐지부지됐다'는 기억은 여러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1993년 제정된 'KBS 윤리강령'에 따르면,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는 프로그램을 그만 둔 뒤 6개월이 지나지 않으면 정치활동을 못하게 돼 있다. 공영방송 KBS의 이미지를 사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2013년 10월 18일까지 KBS의 '9시 뉴스'를 진행했던 대표 앵커는 2014년 2월 6일 오후 청와대 대변인의 자격으로 출입 기자들과 환담을 나눴다. 석 달 스무 날 만의 '사건'이었다. 보도국 문화부장을 맡은 그는 그 날 오전에 열린 여의도 KBS의 간부들 회의에 참석했었다. 구성원들은 공영방송 KBS 저널리즘의 자존심을 쓰레기통에 처박은 '허탈감과 분노', '부끄럽고 참담함' 때문에 말문이 막힌다는 성명서를 냈지만 여러 시청자들 머릿속에 '여의도 앵커와 청와대 대변인' 자리는 오십 보 백 보였다.
세월호 사건 현장에 공영방송 KBS는 국내외적으로 가장 많은 취재 차량과 취재 인력을 대거 특파했지만 피해자 가족들은 KBS가 공영방송 답지 못하고 언론인지조차 의문스럽다며 철저하게 외면했다. 진실을 방송하지 않는다며 거칠게 항의했다. 공영방송 수신료를 납부 해 온 피해자들은 오히려 상업방송 취재진들에게 정보를 제보하고 민영방송 앵커의 어깨에 기대어 참척의 깊은 울음을 토해냈다. 어버이 날인 5월 8일 밤, 카네이션 대신 자식의 영정을 가슴에 품은 피해자 가족들은 KBS 사장의 사과를 받겠다며 여의도에 갔다. 이번엔 사장이 그들을 외면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청와대로 향했다. 피해자 가족들이 노상에서 하얗게 날 밤을 샌 다음 날 오전, 청와대 수석이 KBS에 '말'을 넣었고 그 날 오후 KBS 사장은 청와대 앞으로 달려와 유족들에게 사과 했다. 사퇴당한 보도국장은 사장이 청와대만 바라보고 가는 사람이라며 여러 차례, 구체적으로 보도에 개입했다고 폭로했다. KBS의 신참 기자들부터 보직부장·특파원·양대 노조 등 다수 구성원들은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사장은 '엄벌과 경고' 메시지를 담은 특별담화문을 통해 사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1973년 공영방송 체제로 전환된 KBS의 짧지 않은 역사에서, 시민들이 노골적으로 KBS의 정체성을 부정한 예는 많지 않다. 더욱이 KBS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뜻을 하나로 모아 스스로 위상을 성찰하려는 경우도 드물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KBS가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KBS 사장 인선 등 지배구조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지만 KBS가 진정 시청자들의 사랑과 신뢰 속에 살아가는 방법은 1994년부터 실시해 온 수신료 통합징수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 여부도 상관하지 않고, 납부 의사도 반영하지 못하는 '반강제식' 수신료 통합징수 제도를 유지하는 한, 공영방송 KBS가 시청자들에게 시선을 둘 가능성은 극히 낮다. 공영방송인 영국의 BBC와 일본의 NHK는 뉴스보도의 정확성과 공정성,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을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얻기 위해서지만, 그러한 자세가 공영방송의 의무이기도 하고 그래야만 시청자들로부터 온전히 수신료를 징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KBS에서 열심히 일하는 선·후배와 제자들의 면면을 볼 때 우리도 BBC와 NHK처럼 수신료 분리 징수를 통해 살아남을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가졌다. 시청자를 바라보고 걸어가야 KBS가, 한국방송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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