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근 교수(대전대 경영대학ㆍ전 STEPI 대외정책실장) |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 국책사업 가운데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이니 사회 각 분야에서의 분분한 의견은 당연한 현상이다.
초대형 가속기 설립 국책사업 추진을 놓고 미국 역시 우리와 같은 과정을 겪었다. 1990년 초 미국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 주에 가속기 건설계획을 수립했지만 당시 정치권에서 막대한 투입 예산과 입지에 대해 반론이 분분해 결국 의회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 그 결과, 미국과 기초과학에서 경쟁하던 유럽 22개국이 공동으로 지금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이하 CERN) 가속기를 설립하게 하는 동기를 제공했다.
과학벨트사업은 '은하도시'라는 부제에 붙여져 있듯 과학과 문화 그리고 비즈니스가 어우러지는 명품도시 건설사업으로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도약시킬 '꿈의 선진국 프로젝트'로 구상됐다.
과학기술분야에서 선진국을 추격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기위한 프로젝트로 시작된 셈이다. 이를 위해서 기초과학의 기반 구축은 핵심사항이다.
과학벨트 사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무렵 필자와 만난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 셰베츠 부원장은 “한국의 성장은 이제 정점에 도달했고 곧 하향 길에 접어 들 것”이라며 “그 이유는 기초과학이 없기 때문”이라고 단언할 정도였다.
따라서 선거공약에 의해 과학계에 주어진 이 선물은 시의적절했다고 생각된다. 이를 성공시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다. 막대한 사업비가 투입되는 만큼 우리나라에 맞는 디자인을 하는 것은 전제조건이며, 이를 위해 각 부문 전문가들의 논의를 통한 합의가 필수사항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
먼저, 현재 벨트사업의 범위와 세부내용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과학은 과학만으로 완성될 수 없음을 그동안의 경험을 습득한 것처럼, 벨트사업의 추진에 있어 문화와 비즈니스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포함돼야 한다. 설계 단계부터 '과학의 성과를 어떻게 문화와 비즈니스를 연계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해야한다.
과학은 문화를 만나 재창조되고 비즈니스를 통해 그 가치를 실현하기 때문이다. 40여 년 전 대덕연구단지 조성당시, '어떤 연구소를 설립할까'라는 과학적 과제에만 집중한 나머지 비즈니스와 연계를 위한 특구 특별법과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이 뒤늦게 만들어졌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명칭에서 이제 과학만 홀로 남아 있다면 그 성공을 보장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둘째, 연구단의 어떤 연구 분야와 가속기의 어떤 유형이 우리 혁신체제에 맞는 옷일까 하는 문제에 있어 학문적 이기주의를 벗어나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으로 결정돼야한다. CERN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여러 가속기 등과는 차별화되고 특화된 한국형 첨단 가속기의 설계가 구체화돼야하는 것이다. 유럽 가속기의 축소판이 되어서는 안 되며 특정 연구분야만을 지원하는 연구시설이 되어서도 안 되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과학벨트 사업의 예산이나 일정과 아울러 구체적 사업내용에 대한 점검도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가속기라는 시설을 언제 어디에 구축하느냐하는 문제보다 이 시설을 누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활용할 것인가에 모두의 의견을 모아야 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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