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孤)는 아들 자(子)에 오이과(瓜)를 짝지은 글자이다. 오이가 덩그렇게 열매만 남고 그 덩굴들이 시들어 버리듯 부모를 일찍 여윈 아이와 같다는데서 '외롭다', '부모가 없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당나라시대에 왕유라는 유명한 시인이 있었다. 그는 상서우승 벼슬을 지냈으며, 음악에 정통하고 시를 잘 지었다. 그의 시에는 요새 밖의 전쟁터를 묘사한 시가 많다. 그 내용들은 주로 전쟁 중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원군이 오기를 기다리는 군사들의 절박한 심정, 전쟁터에서 맞이하는 석양녘의 외로운 병사들의 심정, 전쟁터에 나간 친구를 도울 수 없는 자신의 안타가운 심정 등을 은유적으로 읊은 시들이 많다. 이러한 그의 심정이 송위평사 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장군을 따라 흉노족의 우현왕을 잡으려고, 모래밭을 달려 거연지방으로 향하네. 멀리 한나라의 사자가 소관 지역 밖에 오는 것을 아노니. 근심스러워 보이는 구나, 외로운 성에 해가 지는구나(孤城日).”
이때부터 고성낙일은 '세력이 쇠하여 혼자가 되었다'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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