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난순 교열부장 |
그러나 영화 '꽃잎'의 주인공 소녀는 엄마를 버렸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있게 한 엄마를 버림으로써 미쳐버렸다. 짓이겨진 봉숭아물처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붉게 남아있는 80년 5월의 광주. 그 곳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피흘리는 사람들을 버려둔 채 앞으로만 내달려야 하는 아수라같던 세상이었다. 소녀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죽어가는 엄마가 자신을 잡고 있던 손을 있는 힘껏 뿌리쳤다. 매정하게 엄마를 버리고 피눈물을 흘리는 소녀. 소녀는 끊임없이 회상되는 과거 속에 갇혀 고통받고 자해하며 현재를 견뎌 나간다.
심리학에선 어린 시절의 외상성 경험이 미래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특히 애정어린 관심을 받지 못하면 어린이는 감정이입 능력을 형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성격은 삶의 첫발을 내딛는 유년기에 관심과 보살핌, 애정과 이해, 거절과 냉대를 경험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유년기의 상처가 초강대국의 대통령으로서 세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준다. 부시의 부모는 딸 로빈의 죽음과 거기에 대처하는 태도로 인해 어린 조지에게 심각한 장애를 심어줬다. 그의 가족은 로빈이 묘지에 묻힐 때 집에 있었으며 장례식도 치르지 않았다. 냉담한 부모는 조지에게 슬퍼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부시는 훗날그 일로 인해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고백했다.
대통령이 된 부시는 종종 공적인 행위에서 어린 시절의 결핍증상을 뚜렷이 드러냈다. 그는 어떤 사안에 대해 연민이나 상실감을 느끼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을 공격하면서도 떳떳하고 당당했다. 9·11과 대량살상무기를 구실삼아 이라크를 침공하고 붙잡힌 사담 후세인을 능멸하고 죽인 것은 부시 개인의 승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라크는 이로 인해 수많은 민간인이 살상되고 지금도 정정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정신분석가 저스틴 프랭크는 어머니 바버라가 어린 조지의 아픔을 인정하고 그것을 이겨내도록 도와줬으면 좋았을 거라고 진단했다. 마찬가지로 9·11 뒤 부시대통령이 모든 미국인에게 두려움을 잊고 쇼핑을 즐기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했다. 9·11이 왜 일어났는지 있는 그대로 설명했더라면 대중들은 훨씬 더 안도감을 느꼈을 거라는 거다.
'세월호 참사' 한달 째인 지금, “국민의 행복시대의 출발은 국민 안전”이라던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왠지 상처가 억압된 부시의 허장성세와 닮아 보인다. 그녀도 영욕의 대통령의 딸 아니었나. 하나의 의문이 떠오른다. 과연 과거의 상처는 영원한 장애로 남는가?
조선의 왕 정조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증명한다. “두렵고 불안하여 차라리 살고 싶지 않았”던 정조였지만 위대한 통치자로 이름을 남겼다. 할아버지 영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이려 할 때, 그 누구도 사도세자를 구하려 하지 않았다. 신하들도, 외가 식구들도, 심지어 어머니 혜경궁 홍씨도. 어린 정조에겐 감당하기 힘든 참혹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선언, 결핍의 '아버지'를 드러냄으로써 자의식을 극복했다. 그것은 개인적 원한을 사회적으로 승화시켜 세상을 바꾸는 장치가 됐다.
세계가, 온갖 고통에 찬 세계가 숨가쁘게 아우성치고 있다. 칼 융은 “인격의 성장은 소망이나 명령 혹은 통찰에 의해서가 아닌 절박함에 의해 이루어진다. 절박함 없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속절없이 붉게 피는 장미의 계절 5월은 광주항쟁과 더불어 세월호 참사로 기억될 듯하다. '상처입은 자가 치유한다'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은 신화속 주인공이나 정조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피어보지 못한 꽃다운 아이들을 보내고 고통의 시간을 뚫고 나가야 하는 지금 우리에게 정확한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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