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화순 목요언론인클럽 회장 |
채 피지도 못한 어린 자식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우리사회의 적폐(積弊)가 일으킨 세월호 대 참사의 비극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한민국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국회기 배지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는 지난 7일 국회의사당 앞 국기 게양대에서 한글 문양으로 새로 바뀐 국회기를 게양한데 이어 국회의원 배지와 본회의장에 설치된 배지를 형상화한 구조물에 새겨진 한자문양을 한글로 교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국회의원 배지가 한글로 바뀌게 된 것은 모 정당 대표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공론화됐다. 모 정당 전 대표는 “국회의원 배지가 한글화 될 때까지 배지를 달지 않겠다”고 공언을 하고 다녔다.
이후 국회 의장단에서 부화뇌동(附和同) 하면서 개정안을 발의하고 힘을 보태자 운영 위원회에서 의결한 뒤 본회의를 열고 온 국민의 슬픔속에 치러지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국상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사천리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의원 배지 문양이 한글로 만들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60년 제5대 국회 참의원배지와 72년 제8대 국회의원 배지에 한글 '국'자가 새겨졌었다.
그러나 '국'자를 거꾸로 하면 '논'이라는 글자가 돼 국회의원들이 놀고 있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웃지 못할 주장이 제기돼 한자로 바뀐데 이어 이번에 또다시 바뀐 것이다.
국회가 의원들이 국회 배지 한글화를 지지 함에 따라 나라 국(國) 문양을 국회라는 한글로 바꾼 것은 나라 국자가 남의 나라 문자니까 안된다는 것이다.
또 나라 국(國)안에 새겨진 혹 혹(或)자는 늘 있다 변함이 없다는 뜻인데도 자신들이 비리 또는 의혹을 받을 수 있다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한글로 바꿔야 한다는 무지몽매(無知蒙昧)한 변명을 일삼았다.
선량(選良)이라고 하면 뽑을선(選)자에 어질량(良)자로 국민들이 어질고 좋은 사람을 선출해 큰 일 하라고 국회로 보내줬더니 양심에 걸리는 일이 얼마나 많으면 이런 발상이 나오는지 그야말로 의혹(疑惑)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원들이 혹 혹(或)자와 의심할 혹(惑)자를 구별하지 못하고 선동하는 사람의 말만 믿고 20년 이상을 써온 우리의 전통을 무시하고 손바닥 뒤집듯이 하루 아침에 바꾸는 것은 정상적인 처신이 아닌 듯 싶다.
더구나 법과 질서, 기본과 원칙이 무너져 일어난 세월호 참사로 국민적 분노가 가시지 않는 이 와중에 전문가 집단과 의견 개진 등 절차도 무시하고 바꾸지 않아도 될 일을 밀어붙여 오만과 독선으로 정치 불신을 자초하는 국회가 아닌지 모르겠다. 원칙을 지키고 전통을 중시하는 깨어있는 국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