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윤주 부여초 교사 |
“아니라니까! 진짜 금동대향로가 부여박물관에 있다니까?”
“국보잖아요! 국보가 어떻게 부여에 있어요? 서울에 있는 박물관에 있는 거예요!”
우리 고장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는 3학년 사회시간,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래? 그러면 이번 주 토요일에 가 보자!”
이렇게 시작된 학급 동아리 활동은 부여의 유적지를 찾아서, 문화체험활동을 찾아서 한 주 한 주 그 추억을 더해갔다. 동아리 계획을 잡은 토요일마다 일일이 집을 찾아 돌며 차에 태우고 다시 집까지 데려다 주는 수고 정도는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의 눈빛과 어디를 갈지 고민하는 설렘 속에 묻어 둘 수 있었다. 눈앞의 백제금동대향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다투던 아이들이 백제의 역사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관련 축제를 챙기며 지역의 주인으로 변화되어 가는 모습이 더욱 진심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라고 채찍질해 주었다.
능산리 고분군 푸른 잔디 위에 참새마냥 조잘대며 앞서가는 아이들을 보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하나. 늦잠을 자고 부모님을 따라 멜론 하우스를 서성이거나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수없이 돌며 보냈을 황금같은 토요일에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한 이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학교에 대한 추억이라고 한다면 나의 머릿속에도 여러 장의 사진이 남아 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부소산에서 놀다 자율학습에 늦은 일, 중학교 체육대회, 힘들었지만 친구들과 함께여서 재미있던 공부시간, 처음 나갔던 미술대회 등 그 종류도 감정도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너무도 선명하고 따스하게 남아 있는 한 장의 모습은 지금으로부터 가장 먼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기억이다.
교실 문이 열리며 시작되는 기억 하나. 삐걱 대는 복도의 나무마루를 눈앞에 두고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다. 짧은 인사 끝에 선생님께서는 긴 팔을 뻗어 아이들 하나하나를 따스한 품으로 끌어안아 주시곤 하셨다. 집에 가는 것보다 숨 막힐 듯한 그 포근함이 더 좋아 학교 오길 기다렸던 아련한 기억. 내 모습이 어떠한지 선생님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는 흐릿하게 남아 있지만 가만히 허리를 숙여 내 작은 몸을 감싸주셨던 그 장면만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내 기억 속 행복한 학교의 모습이다.
이 기억은 교사가 된 나에게 늘 하나의 과제처럼 남아 있다. 내 기억 속 학교의 따스함과 행복을 나와 만나는 아이들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랄까. 저 멀리 목청껏 나를 부르는 아이들을 보며 손 흔드는 나의 모습도 아이들의 기억 속에 햇살처럼 따스하게 남아 삼십년 후에도 아이들의 이야기 거리로 남을 수 있을까?
지난 2월 학년의 마지막 날이 왔다. 일 년 동안 보아왔던 아이들의 특성에 따라 전인상도 주고 지난 이야기도 나누었다. 4학년이 되어 잘하라는 인사도 빠지지 않았다. 버스가 '빵~' 하고 아이들을 부르는 시간, 마지막으로 던진 인사 한마디. “애들아, 선생님 만나서 일 년 동안 고생 많았다.”
내 욕심에 맞추고자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괜한 고생을 시킨 것은 아닌가 싶었다. 때로는 채근하고 때로는 성질도 내며 아이들을 몰아붙이진 않았는지, 아이들의 기억 속에 행복하지 못한 학교의 모습을 심어주진 않았는지 뒤늦은 후회와 반성이 밀려왔다. 그런데 교실 문을 나서는 아이들의 대답에 순간 마음이 뭉클해졌다. “아니에요. 선생님 덕분에 우리가 더 재미있었는데요?”
어렸을 적 열심히 한 숙제를 검사받고 칭찬을 들은 뿌듯함. 아! 이 아이들도 누군가와 함께 했던 행복한 학교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겠구나!
올해도 어김없이 새로운 친구들과 한 반을 꾸렸다. 그리고 29명 아이들의 가슴속에 행복한 학교를 그려가기 시작한다. 2월의 마지막 날 29개의 서로 다른 행복한 학교가 아이들 기억 속에 한 장의 추억으로 남아 있길 바라며 나의 숙제는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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