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정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창의소재연구실장 |
둘째로 사업화나 시장은 공평하고 합리적인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판매 가격에 대부분 의존하며 이미 점유하고 있는 선도제품이 전체 파이를 독식하는 경우가 많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를 생각하면 미루어 알 수 있다. 기능이 향상된 새 제품이 있더라도 주머니에서 나갈 돈을 따져보고 허용가능한 수준의 가격인상이라면 구입하게 된다. 제조단가와 무관하게 시장이 받아들이는 가격이 이미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두 배를 지불하고 새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에 반해 기술의 개발은 논리적인 절차를 거쳐 완성되는 합리적인 프로세스다. 논리적인 절차로 기술 혹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훈련을 거듭해온 연구자에게 공평하지 않은 기회가 부여되는 시장은 이해하기 힘들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곳이다. 자유경쟁에서의 시장은 선도제품이 현재의 시장뿐만 아니라 새로운 영역까지 확장해가는 마태복음효과(빈익빈 부익부)가 일반적인 발전과정이다. 새로 개발된 제품 가격을 단순히 제조비용에 근거하여 책정하는 것은 시장과 따로 노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모든 제품이 똑같은 이익을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시장에 익숙하지 않은 연구자에게 사업화는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난제일 수밖에 없다.
셋째로 소재 자체가 최종 제품이 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소재가 지닌 고유한 특성을 알아내는 것은 학문의 영역이지만 소재의 특성을 활용하여 원하는 기능을 발현하는 것은 연구개발에서 맡아야할 영역이다. 제조업의 원재료, 반제품, 제품의 사이클에서 소재 분야의 연구과제는 원재료에서 반제품 사이의 범위를 개발하며 최종 제품까지 개발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소재가 제품으로 이어지지 못한 원인은 프로젝트의 한정된 시간과 자원으로 최종 적용까지 고려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소재 자체가 최종 제품이 되는 경우가 적다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소재 자체의 개선도 의미 있는 학문적 진전이겠지만 시장이 원하는 성능을 갖춘 제품으로 진화시키는 것이 연구활동의 가치를 높이는 길이라 하겠다. 결국 현존하는 선도제품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므로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혜택을 제공하면서 가격이 저렴한 특징을 가져야 시장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연구 활동은 기술사업화와 매우 다른 일이다. 한자어로 연구(硏究)는 돌을 갈고 닦아 굴을 파고 들어간다는 말이다. 특정한 분야로 파고 들어가 돌을 반듯하게 세워놓음으로 뒷사람(후대)이 편리하게 만드는 게 연구자의 역할이다. 하지만 굴 안에만 갇히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자. 연구자는 돈으로 표현하는 일에 겁나해서는 안 된다. 굴속에서 힘들게 파낸 물건이 시장에서 팔리도록 지금 시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두고 있어야 한다. 프로젝트가 3년, 길어야 5년임을 기억하고 단기간동안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과 그 가치를 명확하게 설정해둘 필요가 있다. 연구개발을 통해 무언가 혁신적이고 가치 있는 것을 전해야하며 자신의 결과물을 우리 사회로 포지셔닝 시키는 것이 곧 창조경제의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업화 경험은 누구나 적다. 제품과 시장에 대한 확신을 잃지 말고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가는 연구자가 늘어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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