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혜진 대전여성가족정책센터장 |
검색사이트 구글에 들어가 '전업주부 연봉'을 검색하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제공하는 '전업주부 연봉을 찾아라' 계산 프로그램이 나온다. 연령과 거주지를 클릭하고, 하루 동안 나를 위해 쓰는 시간과 각종 가정관리 및 가족 보살피기에 쓰는 시간을 항목별로 입력하면, 1일 총 가사노동의 시간과 월급으로 환산한 금액이 계산되어 나온다. 장난 반 심정으로 현재 퇴직한 아버지와 함께 사시면서 가끔 손주를 돌보시는 어머니의 연봉을 계산해 보았다. 60대이면서 광역시에 살고 하루 8시간 정도 이런저런 가사노동을 하는 내 어머니의 월급은 270여 만원으로 책정되었다. 매일 돌봐야 하는 미취학 아동이나 부모가 있는 주부라면 월급은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전업주부 연봉을 직접 계산하고 보니, 한 번도 자신의 노동가치를 월급으로 환산해 본 적 없는 어머니들이 아마 대다수일 테고, 출퇴근이 없는 이들의 노동은 '가족을 위한 수고 혹은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울 뿐, 이름이 없는 노동, 그래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이 되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글들을 써온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이반 일리히는 그림자 노동 Shadow Work이라는 책에서 사람들이 정식 계약과 임금을 수령하는 노동만을 '제대로 된 노동,' '정상적인 노동'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임금 노동 중심의 사고는 임금 노동 외 많은 노동들을 하찮게 여기는 풍조를 만들어 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림자 노동'은 가사노동과 더불어 돌봄, 양육, 이동(통근) 등 우리 사회를 존속 유지하게 하면서도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모든 노동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그림자 노동을 떠맡는 대다수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 노인, 아이 등 일명 사회적 약자층이라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그림자 노동'의 문제를 거의 문제 삼지도 않을뿐더러 한편으로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삶의 한 모습으로만 여길 뿐, 다른 '임금 노동'과 같은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노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반 일리히는 '그림자 노동'과 '일반 노동'은 실제 산업 경제 구성에 있어서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쌍이고, '임금 노동'도 '그림자 노동' 없이는 존속이 불가능한 것으로 설명하면서, '임금 노동'을 하는 사람들(주로 남성)만이 진정한 노동자로 대우받는 현실을 비판한다. 번듯한 월급 통장이 없는 '그림자 노동'이 실제로는 우리 삶의 거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노동임을 깨닫는 것, 그리고 그 가치를 바르게 평가해 주는 일이 새삼스럽게 중요하게 다가온다.
오는 13일 대전여성가족정책센터는 지금까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었던 전업주부들의 삶, 그들의 '그림자 노동'의 가치를 지역공동체가 어떻게 인정해주고 평가해 줄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번 토론회에서 실천 가능한 전략들이 주부들에게서 직접 제안된다면, 가정 안에서 그리고 대전지역공동체가 어떠한 '대전형 가족친화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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