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수 건양대 총장 |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TV를 지켜보다가도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봄놀이 꽃경치를 보러 가는 것도,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죽어가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어른된 죄스러움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연예인들이 행사를 접고, 전국 관광지나 놀이시설이 한산하다는 것도 이번 사고를 통감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분노의 감정으로 가득했다. 우리나라 최장의 항로를 운항하는 최대의 여객선이 어떻게 그렇게 무방비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날 수 있으며, 사고 후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의 무책임한 행동을 전해 들으면서 분격했다. 또 구조 초기 관계기관들의 우왕좌왕함이나, 선박 자체의 노후함이나 무리한 증·개축으로 인한 선체 기기불량과 출항 당시부터 어마어마한 화물과적 등이 밝혀지면서 분노는 폭발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21세기 선진국으로 우뚝 서고 OECD 회원국인 경제대국으로 우쭐대던 대한민국 정부에, 아니 그보다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에 수치심이라는 비수를 꽂은 셈이 되었다. 누가 누구를 탓하고 꾸짖을 수도 없는 총체적인 부실에, 총체적인 거짓에, 총체적인 무능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로 참담한 지경으로까지 몰아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사고 당사자인 세월호 선원들에게만 있다고 볼 수 없다. 선체의 이상 신호를 못 본 척해오고 선원의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선사는 물론 출항 시 관계되는 수많은 사항들의 점검을 맡은 각종 기관들의 역할은 어떠했는가.
섬과 암초가 많고 물살이 세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항로의 운항을 지켜보며 선박의 이상스러운 움직임을 관리감독해야 했을 관련 기관들의 역할은 또 수차례 국가적인 재난을 겪으면서 국가 안전망 확보 차원에서 수없이 외쳐왔던 국가재난체계의 확립은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그동안 우리가 쌓아왔던, 아니 대한민국이 쌓아왔던 모든 것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인지 허탈하기만 하다. 한평생을 국가성장에 나름대로 기여해왔다고 자부하던 대부분의 국민들은 상실감으로 큰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그 근원적인 처방책을 찾아야 한다. 이같은 총체적 부실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 과감한 수술을 가해야 한다. 이는 더 늦출 수 없는 일이다. 이 상태로는 아무리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국가적인 부를 쌓아간다 해도 모든 것이 한낱 사상누각(沙上閣)에 불과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물음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려 드는 일이 있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온 국민이 책임을 자각하고 모두가 참여하여 문제의 해결에 나서야 한다. 1930년대 말, 1차대전과 세계적인 대공황을 거친 후, 미국을 중심으로 '도덕재무장운동'(MRA: Moral Re-Armament)이 일어난 적이 있다. 인류문명을 물질적인 힘보다는 정신적ㆍ도덕적 힘이나 양심적ㆍ인격적인 힘으로 발전시키자는 운동이었다.
국민 개개인이, 그리고 가정과 사회 각 분야에서 자신이 맡은 직분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도덕과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겪었던 어처구니없는 참사들이 일어날 리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국가가 제도적으로 잘 만들어 놓는다고 해도 국민의식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지키지 않는다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도 도입돼 '정직한 개인' '순결한 가정' '무사(無私)로운 국가' '사랑의 세계'를 실현하자는 운동으로 주로 학생층들은 대상으로 전개된 적이 있다. 지금은 바로 온국민을 상대로 한 이같은 도덕재무장운동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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