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근]“가족은 든든한 울타리자 살아가는 힘이죠”

[최석근]“가족은 든든한 울타리자 살아가는 힘이죠”

96세 할아버지부터 갓 태어난 막내까지 9명 대가족 4년째 한집에서 '도란도란' 서로의 부족한 부분 채워가며 균형맞춰 화목한가정 자녀와 격의없는 대화도 한몫

  • 승인 2014-05-06 13:00
  • 신문게재 2014-05-07 9면
  • 이경태 기자이경태 기자
●중도초대석-한지붕 4代 최석근 씨 가족

5월은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살피고 부모와 자식간 정을 나누는 가정의 달이지만 상당수의 현대인은 '부담이 되는 달'로 여긴다.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가족을 특별히 챙겨야 하는 '귀찮은 달'로 치부되기도 한다. 핵가족 시대를 지나 이제는 1인가구 시대를 맞아 가족이라는 의미에서 혈연관계 이상의 의미를 찾기가 힘들어졌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의미로 식구라는 말이 있지만 이제는 가족과 밥을 함께 먹기위해 약속을 미리 잡아야 할 지경이다. 노부모는 요양병원에 맡기는 시대가 됐고 아이들 교육문제로 부부가 떨어져 살게 돼 생겨난 기러기 아빠는 이젠 생소한 말도 아니다. '떨어져있다'는 말보다 '함께한다'는 말이 오히려 어색한 사회속에서 대가족을 이뤄 희노애락을 공유하는 가정은 우리 사회의 화석이 돼가고 있다.

화석화되고 있는 대가족을 현재에도 일궈 4대가 함께 살고 있는 서구 관저동 최석근씨 가족은 요즘 사회 분위기를 역행(?)하는 듯하다. 9명의 구성원이 한 집에 살면서 희로애락을 함께 겪어가는 최석근(35)씨를 만나봤다. <편집자 주>

▲96세 할아버지부터 지난달 태어난 막둥이 아들까지 최석근씨의 가정은 4대가 모여 살지만 배려와 사랑으로 날마다 웃음이 넘친다. 사진왼쪽부터 최석근씨의 어머니 신명화씨, 둘째딸 혜현, 부친 최호붕씨, 장남 현왕, 할아버지 최종덕 옹, 최석근씨, 장녀 선희, 부인 윤현정씨, 막내아들 현호. 사진=이성희 기자
▲96세 할아버지부터 지난달 태어난 막둥이 아들까지 최석근씨의 가정은 4대가 모여 살지만 배려와 사랑으로 날마다 웃음이 넘친다. 사진왼쪽부터 최석근씨의 어머니 신명화씨, 둘째딸 혜현, 부친 최호붕씨, 장남 현왕, 할아버지 최종덕 옹, 최석근씨, 장녀 선희, 부인 윤현정씨, 막내아들 현호. 사진=이성희 기자

-가족구성원은 어떻게 됩니까? 4대에 걸쳐 9명의 가족이 함께 살 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할아버지를 비롯해 아버지, 어머니, 아내, 두 딸과 두 아들까지 합해 모두 9명입니다. 지난달 넷째인 막내 아들이 태어나 9명으로 가족이 늘었지요. 저희처럼 4대가 함께 한 집에서 사는 가정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서는 부러운 시선을 보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4대가 모여 살 수가 있느냐며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부모와 같이 사는 것은 당연하다고 대답하지요. 어찌보면 제 부모님도 할아버지를 모셔왔기 때문에 오히려 분가해 사는 것이 지금은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석근씨의 가족은 96세인 할아버지와 올해 갓 태어난 아들(1)의 나이 차이가 95세다. 이 가족이 관저동에서 대가족을 일궈 함께 살기 시작한 해는 2011년이다. 횟수로는 4년째로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이 가족은 대대로 부모 봉양을 미덕으로 삼아왔다고 한다.

최씨 가족이 지금의 대가족을 일군 데는 가족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이해가 된다.

최씨의 부친인 최호붕(65)씨는 나이 31세(1980년)에 신명화(61)씨와 결혼을 하고 온양에서 주유소에 취업해 일을 했다.

당시 부친인 최씨는 경기도 양주에서 농사일을 하던 최종덕(96)옹을 모시지 못해 분가해서 살았다. 하지만 이후 1992년 그동안의 주유소 직원 생활을 청산하고 금산에서 주유소를 개업하게 됐다. 가세가 넉넉해져 그해부터 최 옹을 모시고 살게 됐다.

여동생이 둘인 장남 최호붕씨는 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예전부터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그 처인 신명화씨도 마찬가지다.

신씨는 며느리로서 시부모 봉양이 부담스럽기는 커녕 친부모처럼 따랐다. 사실 신씨는 19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28살에는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면서 부모의 정이 그리웠다고 한다. 신씨로서는 시부모에 대한 애정이 각별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모습은 그대로 최석근씨의 눈에 고스란히 담겼다. 군제대후 곧바로 결혼한 최석근씨는 금산에 살 때만 하더라도 분가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후 대전으로 프랜차이즈 상점 창업을 한 뒤 2011년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까지 함께 모시게 됐다. 2살 연상 아내인 윤현정(37)씨 역시도 “어차피 합칠 거, 미리 합치자”며 최씨의 생각을 존중해줬다. 넉넉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윤씨는 신세대 주부답지 않은 통큰 마음으로 조부모와 함께 사는 시부모를 한 울타리안으로 감싸안았다.

최씨는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고 본다”며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고 그렇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 역시 부모를 모시는 게 당연한 일”라고 수줍게 웃었다.

- 대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 여러모로 쉽지만은 않은 일인데, 서로에게 어떻게 의지해 살아가는 지 궁금합니다.

▲“힘들 게 없어요. 아버지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처럼 혼자 살면 혼자힘으로 해결해나가야 하는 데 같이 살면 서로 의지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의 부친인 최호붕씨는 타지에서 힘든 주유소 직원생활을 하면서 외로움이 컸다고 한다. 여동생 둘밖에 없고 남자 형제가 없어 고민을 털어놓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의 외로움은 가족이 함께 모여 살아야 한다는 절실함으로 귀결됐다. 최석근씨도 최근에는 프랜차이즈 구이집을 경영하고 있지만 대가족이 항상 힘이 된다고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연신 자랑했다.

최씨가 대전으로 이사올 때 아버지 최호붕씨도 그동안 경영해왔던 주유소를 청산해 할 일이 없었고 이제는 최석근씨의 경영에 일손을 더하고 있다.

경영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아버지 최씨는 매장을 관리하고 아들은 프랜차이즈 매장을 확대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집안에서도 고부간의 갈등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제는 손주가 넷이나 돼 육아를 하는 데 며느리 윤씨 혼자로는 숨이 찰 정도다. 막내를 출산한지 한달여가 된 며느리를 위해 시어머니인 신씨는 육아와 가사를 돕는 게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셋째인 개구쟁이 아들 최현왕(9)군이 말썽을 부리더라도 육아라면 이골이 난 신씨에게 하룻강아지의 재롱에 지나지 않았다.

최씨는 “부모를 부양하고 있지만 부모가 그저 바라보지 않고 자식의 손이 가지 않는 부분을 채워주면서 저희 가족은 하나가 되는 것 같다”며 “누구에게 치우치지 않고 서로의 도움이 균형을 맞아가기 때문에 이렇게 웃으면 살 수 있지 않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가족사에서 굴곡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가족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어떤가요?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저희 가족은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그 말을 항상 믿고 있습니다. '내가 잘해야 자식도 보고 배우며, 내가 부모를 싫어하면 자식도 싫어한다'는 아버지의 말이 항상 귓가에 맴돌거든요. 다함께 한 집에서 살아가면서 가족의 소중함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최씨의 인생관처럼 이 가족의 사업 역시 순탄하게 진행돼왔다.

4년간의 고달픈 주유소 직원생활 끝에 주유소를 개업해 부모를 모실 수 있었던 부친은 물론, 금산에서 PC방을 운영하다 대전에서 이제는 프랜차이즈 창업과 창업 매니저일까지 하고 있는 최씨까지 모든 결실의 의미를 가족에서 찾고 있었다.

며느리 윤씨는 대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조차 느낄 수 없다며 해맑게 웃었다.

대가족이 아닌, 친정의 가족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시집살이지만 윤씨는 시댁에 살기보단, 시부모와 함께 산다는 의미에 무게를 실었다.

최씨에게는 아내 윤씨의 마음이 한없이 고마울 따름이란다. 며느리로서 말할 수 없는 어려움도 있겠지만 시부모와 자신과의 사이에서 가정 분위기를 조율하는 모습에 최씨의 아내를 향한 정이 한층 더 싹을 틔운다.

아내와 어머니가 육아와 가사를 도맡고 있지만 최씨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하며 대가족의 기틀을 잡아간다.

장녀 최선희(13)양이 누구보다도 집안에서 대화를 많이 하는 사람이 바로 최석근씨다.

사업이 바쁘더라도 자녀와의 대화의 시간을 반드시 만든다는 게 최씨의 생활 신조다. 부모를 봉양하는 것에 비례해 자녀를 키우는 것 역시 가족을 이끌어가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이 가족이 가정의 화목을 찾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대화다. 가족 구성원이 많을 뿐더러 일도 바쁜 것이 현실이지만 종종 최씨 가족은 가족회의를 연다.

건강문제는 물론, 사업에 대한 얘기, 자녀들의 학교 생활, 여자 식솔의 고민 등 가족이 함께 알아가야 할 얘기를 스스럼없이 꺼낸다고 한다. 가족회의를 통해 가족 구성원의 생각을 알고 때론 자신의 상념을 털어놓을 수 있어 서로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배려할 수 있게 된다는 게 최씨의 설명이다.

최씨는 사업이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 역시 가족의 힘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아버지도 그렇고 저도 그렇지만 가족이 함께 살면서 사업이 잘 됐던 것 같아요. 가정에서 서로 힘을 보태기 때문에 바깥에서도 그 힘을 받아 더 활력있게 일할 수 있었던 게 비결이 아닌가 싶네요.”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단 대가족으로 살거나 부모와 함께 살게 되면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다고 봅니다. 가족은 한 방향으로 내리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닌, 서로 사랑을 주고 받는 존재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합니다. 제가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은 자식된 도리를 하는 것이며 저희 부모님 역시 자식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을 항상 느낍니다. 부모와 함께 살지 않고 떨어져사는 서구화된 문화보다는 한국 전통을 되새기면서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최씨는 대가족의 가장이지만 아직은 조부와 부모 아래에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게 미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가족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 대단하다거나 특별하다는 말을 하는데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며 “다만, 가족 모두가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니 더욱 끈끈하게 뭉칠 수 있는 것 같다”고 자부했다.

이경태 기자 biggerthan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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