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규문 대전평생교육진흥원장 |
공통된 가치관이 붕괴되고 목적의식이나 이상이 상실되는 사회적 혼돈 상태를 일컫는 아노미 현상이 인간과 국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대한민국을 덮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정신적 부적응을 경험하게 되고, 영구적 정신 장애를 겪는 집단 트라우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은 위험 속에서 기고만장했던 우리의 초라한 정신세계가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바뀌지 않는 관료와 정치인, 부조리하고 탐욕스런 기업, 위안과 구원에서 멀어져도 너무 멀어진 종교까지 모든 구석이 다 병든 사회, 위기의 사회가 되어 버렸는데도, 이런 우리 사회의 병리가 너무나 고질적이어서, 너무나 조직적이어서, 너무나 힘이 세서, 세상이 그런 것이라 치부하고 체념하고 안주하며 살아왔던 우리는 다 비겁했다는 자괴감을 떨칠 수 없다.
에리히 프롬은 일찍이 물질적 풍요와 감각적 욕망의 충족으로 인간을 몰아가는 병든 현대산업사회의 모습을 비판하면서 자기중심주의, 이기심, 탐욕으로 가득 찬 인간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음을 경고하였다. 현대산업사회에서 돈, 명예, 권력에 대한 탐욕이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게 되었지만 물질을 소유하고 소비하는 데서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것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된다는 점을 프롬은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데서 쾌락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인간의 병든 심성이 다시 병든 사회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사회와 개인에게 근본적인 변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는 사회적 변혁은 우리의 심성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새로운 인간의 형성으로만 가능할 수 있다. 프롬은 현대사회의 인간 불행과 사회 병리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소유 지향적 가치관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존재적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회복하자고 호소한다. 존재 지향적 삶은 어떤 것을 소유하거나 소유하려고 갈망하지 않으면서도 즐거워하고 자기의 재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며 세계와 하나가 되는 삶의 양식을 말한다. 소유 지향적 가치와 생활양식에서 인간의 행복은 타인에 대한 우위 속에, 자기가 구축하는 힘 속에 있지만, 존재 지향적 가치와 생활양식에서는 인간의 행복이 사랑, 공유 그리고 주는 행위 속에 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프롬은 우리가 우리의 현재 고통을 의식하고, 그 고통의 원인을 인식하고,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우리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특정한 행동규범에 따라 현재의 생활습관을 변화시켜야 함을 인식 한다면 실제로 인간의 성격이 변화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프롬이 제시하는 새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성격 구조의 특성들에는, 가능한 한 탐욕과 증오, 그릇된 환상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 소유를 기꺼이 포기할 마음가짐을 갖고 축재와 타인을 착취하는 데에서 얻는 기쁨이 아니라, 베풀고 나눠 갖는 데에서 우러나는 기쁨을 갖는 것이 들어 있다. 그리고 자기 존재에 대한 믿음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욕구, 관심, 사랑, 주변세계와의 연대감을 바탕으로 한 안정감, 자아 체험, 자신감을 가질 것을 충고한다. 또한 성취 여부보다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생명의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모든 생명체와 일체감을 느끼면서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과 협동하려고 노력하기를 제안한다. 프롬의 생각대로 우리의 한계, 그리고 인간의 병적인 성격과 추악함을 직시하되, 우리의 잠재적 능력과 위대성을 자각하고 우리의 힘으로 현실을 변혁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되찾는다면 우리도 정말 바뀔 수 있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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