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욱 복음신학대 대안교육학과 교수, 대안교육센터장 |
교육학자로서 필자는 우선 두 가지 지점에 대해서 꼭 짚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교육이 어떻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상식적인 사람들의 정서와는 달리 사건 내내 여러 사람들의 말실수가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이 말실수들은 사실 '실수'라기 보다는 본심의 우연한 드러냄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함께 감정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이 남녀노소나 지위고하를 구분하지 않고 이토록 많다는 사실에 대해 절망하면서, 우리 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공감'교육을 강화할 수 있을지 근본부터 살펴야 한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는 '수학여행'에 대한 성찰이다. 일단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이번 학기에 계획되었던 수학여행은 모두 잠정 연기된 모양이다. 물론 너무나 충격적이고 큰 사고니 정서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일정들을 잠시 연기할 수는 있겠다. 그런데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수학여행을 없애자는 논의가 있는 모양이다. 여전히 훈육과 통제의 차원, 혹은 잠깐의 숨통 틔우기 차원에서 수학여행을 들여다보며 이럴 바에는 폐지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논지로 몰아간다. 그런데 그런 논리 안에는 '여행'과 '배움'에 대한 중요한 성찰이 빠져있다.
아일랜드의 속담은 '집에만 있는 아이는 어리석다'고 했으며 영국 속담은 '널리 여행하면 현명해진다'고 했다. 그렇기에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이 '여행은 젊은이들에게 교육의 일부'라고 표현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여행은 오래된 교육의 수단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신전 순례 형태의 여행이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고대 그리스 시대 올림픽 참가를 위한 여정은 교육과 여행이 연결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중세의 성지순례는 정치적인 문제로 본질이 왜곡되기는 했지만 그 원형은 역시 여행을 통한 깨달음이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중세 시대 유럽 귀족들의 자녀 로마 보내기는 17~18세기를 거쳐 '그랜드투어'라는 이름의 필수 교육과정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동양의 예도 풍부하다. 춘추 전국시대 제자들과 함께 길을 떠난 공자의 주유천하나 신라의 화랑들이 심신 수련을 위해 심산유곡을 여행했다는 이야기들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이렇듯 고대부터 여행이 교육의 중요한 수단으로 쓰였던 이유는 매우 자명하다. 교육이 '교실'이나 '책'이라는 죽은 공간으로부터 나와 '삶'과 맞닥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여행이기 때문이다. 배움이 살아있는 현실과 만날 때 그것이 비로소 의미 있는 지식이 되고 그 몸을 얻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아이들은 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것이 배움의 길이기 때문이다. 성장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이 여행을 안전하게, 그리고 가치 있게 해 줄 수 있도록 주변 조건을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 기성세대들의 몫이다. 다시 한 번,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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