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기 편집부국장 |
아들의 질문 이면에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부실한 국가 안전시스템의 현주소를 직접 확인한 데서 생긴 불안과 실망감이 담겨 있다. 또한 직업의식 부재와 책무를 다하지 못한 어른들에 대한 질타와 반항이 숨겨져 있다.
자녀들에게 고개를 못 든 일은 작년에도 있었다. 고약하게도 배〔船〕와 관련이 있다. 지난 해 6월 가족들과 서산 안흥항에서 격렬비열도를 2시간에 걸쳐 관람 운항하는 대형 페리호 유람선을 탔을 때다. 그 때 아들이 물었다. “내가 이 배에 탄 것은 체크된 거죠?”라고 말이다. 하지만 어른과 아이들, 남녀노소가 한꺼번에 승선함에도 승선자 명부를 작성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배에 누가 탔는 지 알리가 없다. 만약 사고가 발생했다면 승선자를 파악할 수 없을 게 뻔했다. 유람선 안의 풍경은 더욱 가관이었다. 페리호 지하는 조명까지 설치돼 무도회장으로 꾸며져 운항 내내 일부 남녀 승객들이 껴안고 가무를 펼치는 꼴불견을 연출했다.
관광유람선의 행태가 이럴진 대 서해 섬의 자연비경을 직접 자녀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국토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려던 현장체험의 성과를 얻을 리 만무였다. 웃기는 것은 최근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자 안흥항 관할 해경과 지자체 등이 뒤늦게 유람선의 안전관리와 음주가무 행위 등을 단속하겠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동안은 왜 방치했는 지 모르겠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감추어진 치부를 또 다시 노출시켰다. 생명이 오가는 현장에서 선장과 선원들은 고객들의 안전은 챙길 생각없이 자기 목숨 부지하려 먼저 탈출하는 모습만 보였다. 위험구간 항로를 운행할 때 진두지휘해야 할 선장은 자리를 비웠고 탈출할 때는 속옷차림으로 허겁지겁 뛰쳐 나왔다. 선장이 그런 위태로운 순간에 왜 속옷차림이었는 지 의아하다. 나부터 살고 보겠다며 선장과 선원이 먼저 도망치는 나라, 시스템 책임자의 도망으로 신뢰자가 희생당하는 웃기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 한국이다. 그래서 한국은 세계에 저신뢰 국가로 낙인찍혔다.
경제 덩치에 비해 안전이 불안한 나라, 시민의식이 미성숙한 나라로 각인돼 저신뢰 국가의 이미지를 심어주게 됐다.
대형 사건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사후약방문격으로 대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사건사고는 멈추지 않고 있다. 군 복무의 어려움을 얘기할 때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고 하지만 한국에서 사건사고 시계도 멈출 줄을 모른다. 오죽하면 국내에 상주한 해외언론 특파원들이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대형 사건으로 기사거리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한국을 신기해 하겠는가?
대형 사건사고에는 대부분 인재(人災)가 숨어 있다. 인재(人災)가 쉼없이 발생하는 것은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이 고착화 됐기 때문이다. 아예 불치병이 됐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부르짖었고 정치권도 법을 뜯어 고치겠다고 설파했다. 안전관리 조직도 강화해 소방방재청이 신설됐고 박근혜 정부에선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내걸고 부처명도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명패까지 바꿨다. 그런데도 사람의 생각과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세월호같은 참사가 또 다시 벌어졌다.
제도만으로는 세월호 비극을 막을 수 없다. 위기·재난관리법 등 제도를 만들어 놨지만 학습없이는 안전을 확보하지 못한다. 정보를 집중하는 안전관리기구를 갖추고 조직학습을 통해 체질화시켜야 한다.
세월호 참사 수습과정을 보면서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 신뢰와 존경이 무너져 내렸다.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보니 불신과 원망뿐이다. 이제 회복해야 한다. 기존 틀을 깨는 국가 개조가 시급하다. 그러러면 국민들의 고질병인 냄비 근성, 조급히 이루려다 부실을 낳는 빨리 빨리병, 지역감정 병폐, 비생산적인 정치 등 제대로 나아진 게 없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바꿔야 한다.
요즘 횡단보도 정지선 위반차량을 단속하고 있다. 횡단보도 정지선 하나 지키지 못하는 국민성이라면 국가개조로 희망찾기란 사실 쉽지 않다. 그렇지만 희망의 끈은 남아 있다.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서도 어른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면서 자신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내줬던 학생들의 고귀한 심성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 세대가 있기에 국가개조로 희망의 나라로 바뀌는 그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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