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은주 아산 월랑초 교사 |
2013년 2학년 담임으로 아이를 처음 만났다. 교실에 들어오지도 않고 복도에서 빙빙 돌다가 들어오라는 소리에 교실에 들어와서는 전혀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아이. 제 마음대로 장난하고 돌아다니다가 만들기라도 하는 시간이면 준비물이 아무 것도 없다. 우울증이 있는 아이 엄마는 외부와 접촉을 단절한 사람이고, 아빠에게 전화하면 엄마하고 이야기하라는 말 한마디로 전화를 끊었다. 게다가 아이는 어떤 것을 물어도 묵묵부답.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지구를 그려 놓고 뚝뚝 떨어져 있는 세 사람 그림이 전부인 종이를 내밀고는 설명해 달라는 말에 일본에 아빠, 중국에 엄마, 한국에 자기가 있다고 했다. 그동안 여기저기 물어서 알아낸 아이의 상황을 실감하며 그동안 아이가 느꼈을 외로움에 가슴이 시렸다.
그 후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는다, 숙제를 해 오지 않았다, 그날 할 일을 다 마치지 않았다 등 각종 핑계를 대어 아이를 남겼다. 함께 숙제도 하고, 집중하지 않았던 교과 공부도 시키고, 못 외운 구구단을 외우게 하면서 둘 만의 시간을 늘려갔다. 그런 시간이 늘면 늘수록 내 주변에서 서성이는 아이.
그러던 아이가 12월 어느 날부터 다시 말수가 없어졌다. 답답했던 처음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묻고 또 묻기를 수차례. 아이의 대답은 3학년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이 무섭다고 했다. 누구나 새로운 시작에서 가질 수 있는 감정이지만 다른 아이들에 비해 적응속도가 느린 이 아이의 느낌은 그것과는 다를 것 같음을 알기에 3학년 담임을 하겠다고 약속을 해버렸다. 진짜인지 몇 번을 거듭 확인한 아이는 다시 주위에서 맴돌았고, 나 역시 그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배신을 해버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다가오긴 했지만 약속을 못 지킨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다. 다시 마주친 아이는 꽤 이른 시간에 등교하고 있었다. 2학년 때 첫째 시간 시작할 때쯤 오던 모습과 너무도 다르기에 3학년이 되어 부쩍 컸다고 칭찬했더니 눈도 마주치지 않고 고개 숙인 채 조용히 하는 말이, “2학년 때 약속했잖아요. 선생님은 우리 선생님하고 저는 일찍 오겠다구요. 한번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했잖아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담임이 되겠다고 약속하면서 일찍 오면 좋겠다고 했던 내 말, 고개를 끄덕인 적도 없고 책상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듣기만 했던 아이가 그 말을 약속으로 기억했던 것이다.
25년이라는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면서 아이들에게 했던 크고 작은 내 약속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때 약속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꼭 지킬 수 있게 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 번 한 약속은 어떤 일이 있어도 어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무척이나 강조하였다. 아이들은 그 말을 기억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할 나는 신중하지 못한 생각으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버렸고 그것으로 인해 아이를 실망시켜서 거짓말을 한 선생님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되어버린 약속인데도 아이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면서 아이 마음에 내가 남겼을 선생님에 대한 서운함과 실망스러움의 앙금이 얼마나 클까를 생각해 보았다. 내 눈앞에 있는 아이의 어두운 얼굴을 펴주겠다는 생각만으로 나는 얼마나 커다란 실수를 한 것일까. 이 아이의 마음에 남아있는 앙금이 아이와 함께 자라서 나중에 나처럼 헛된 약속을 하게 되진 않을까. 생각은 늘 앞서가야 하는데 그 순간의 생각만큼은 정말 뒤떨어진 것이었다는 한심함으로 스스로를 자책했다.
참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살면서 이제 선생님 소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을 거라고 자만했던 나는, 아직도 아이에게 한 수 배우는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