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규석 한국폴리텍Ⅳ대학장 |
승선관리는 전근대적이고 항해기록조차 없다. 국민안전을 책임지는 선장과 선원들은 규정을 어기고도 발뺌하기로 일관하고 있다. 이를 감독하는 기관도 형식적이고 적당하게 눈감아주는 부실한 관리를 해 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법은 있으나 지키는 자만 손해보고, 적당하게 처리하는 자가 대접받는 관행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사회 전반에 스며 있다. 이제껏 우리를 짓누른 지배적 가치관인 '결과 중시, 과정 무시'와 결별하지 못한 것도 참사에 일조한 것이다. 이런 가치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요소를 꼽으라면 필자는 특권으로 작용하는 관료제, 그리고 상부구조인 정치를 지적하고 싶다. 관료제는 전문성과 합리성의 상징이고 명확한 권한과 체계적인 조직으로 우리의 경제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문제는 공공부문의 영역이 매우 넓고 그 힘이 강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퇴직관료를 영입하여 로비스트로 활용하는 데서 파생되는 문제점이다.
특히 이번 사고에서 보듯이 생명과 직결되는 선박검사와 안전관리분야 업무를 수행하고 기관에 퇴직관리가 자리하는 것도 감독의 약화 우려를 낳고 있다. 기업과 이익단체가 퇴직관리를 활용하여 예리한 정부의 창(법과 규제)에 방패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에 대한 대책도 있어야 한다. 일부 기업들의 탐욕스런 이익추구가 판을 치고 어쩌다 법망에 걸리면 일부 재산을 내놓는 방식으로 일이 처리되는 것도 법의 정신을 훼손한다.
대한민국 전체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체제도 문제다. 서구에서 정당들이 100년, 200년씩 지속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3, 4년에 한 번 꼴로 문패를 바꿔달기에 급급하고, 선거 직전까지도 게임규칙을 바꾸기 바쁘다. 정당이라는 정치제도가 사람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선거 때마다 빅맨이 나타나 판을 뒤엎는 변화를 시도하다 보니 정치제도 그 자체가 성숙되는 과정을 찾아볼 수가 없고 의회정치도 대립적이며 권력의 인격화만 가져오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 세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한 끝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에 올라섰지만, 세월호 참사와 같이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법을 만들고 지키고 적용해야 하는 주체들부터 법을 무시한 데서 오는 것이다. 정치영역에서의 끝없는 판 뒤집기와 재빠른 변신도 한국사회에서 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만 중시하는 풍조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예측 가능한 사회를 쌓는데 실패하게 만든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다.
과정은 무시되고 결과만 좋으면 된다거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임기응변식 사고와 행태가 지금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이다. 이제는 이렇게 갈수 없는 것이 자명해졌다. 우리가 서둘러 산업화를 달성하면서 책임의식과 절차적 정당성을 마련하는데 익숙하지 않지만, 절차적 정당성, 행위규칙, 게임규칙을 갖지 못한다면 선진국으로 올라설 수는 없다.
우선 일반인의 의식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정치부터 달라져야 한다. 정치란 막스 베버의 말대로 정열과 판단력을 구사하면서 단단한 판자에 힘을 모아서 서서히 구멍을 뚫어가는 작업과도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빅맨이 나타나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줄 거란 믿음은 환상이다. 정당이 사람을 길러내지 못하는 한 인물중심의 정치는 법에 의한 규칙이 지배되는 사회를 만들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중간과정을 무시하고 편법과 부적절한 수단을 가지고 의도하는 목표를 달성해도 된다는 시그널로도 작용한다.
이제 우리는 부적절한 수단을 사용했을 때 비록 그것이 성공했을지라도 용인해서는 안 된다. 정의론의 저자인 존 롤즈는 절차적 정의가 지켜져야만 공정한 기회의 원칙이 설 수 있다고 보았다. 절차적 정의가 없이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본 것이다. 공정한 절차는 그것이 진실되게 수행되었을 때에만 공정성을 부여받는다고 한 것이다. 결과를 내려면 수단과 방법도 좋아야 하는 것 선진사회이다. 편법과 나쁜 수단의 사용은 성공할 수 없다는 가치관이 사회저변에 깔려야 정상사회로 다가설 수 있다. 시민의 안전이 제일이고 절차가 준수되는 선진사회 만들기는 더는 일회성 땜질, 대증요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2, 3년 혹은 다음 정부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치밀하게 준비하고 실천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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