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
볼일이 있어 산청에 갔다가 시간이 남아 동네 다방에 갔는데, 60~70대 할아버지에 가까운 아저씨들이 있고 그 곁에서 젊은 다방 레지들이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점심때가 되니 다방에서 짜장면을 시켜먹는 모습조차 그곳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화면 너머로만 보던 장면이 실제로 내 눈앞에 펼쳐지자 신기함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이 갔다. 드라마나 영화 속 다방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고, 이제껏 내가 몰랐을 뿐이지 그렇게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사뭇 충격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모습과 형태로 이런 곳도 역시 공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시골 다방을 알게 해 준 산청과 달리 강릉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커피거리와 커피축제와 커피 박물관이 있는 지역으로, 커피문화가 상당히 발달해있다. 자생적으로 그 이름을 알리게 된 커피명가들이 많은 곳이 바로 강릉인데, 나는 그 중 시내 중심가가 아닌 깊은 산 속에 위치한 커피숍에 간 적이 있다. 단지 커피가 좋아서 관련공부를 했고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비록 산속이지만 가게를 차렸다는 주인, 그렇지만 커피 맛이 워낙 좋아 입소문을 타서 어느 새 전국에서 찾아올 만큼 유명해졌다. 산청에서 본 다방과는 정반대로 커피 자체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그런 곳이었다. 도심에서는 몇몇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구석구석까지 발을 뻗치고 있는 와중에도 어느 지역에는 방송에서 볼 법한 다방이 있고, 또 어느 지역은 뛰어난 커피 맛으로 산속이라는 장소가 무색할 만큼 유명해진 커피숍이 있다. 좁은 나라 안에서도 이처럼 상이한 커피문화가 공생하고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요즈음 현대미술계에도 고급예술이 아니라 통속예술의 경향이 뚜렷하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이란 일반 사람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에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 속해 있는 사소함이 예술로 거듭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작가가 조명을 받고 있는 추세인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미술가 중 하나인 '제프 쿤스(Jeff Koons)'는 '풍선 강아지(Balloon Dog)'라는 파티용 풍선을 꼬아서 만든 강아지의 형태를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커다란 조형물과, 논란이 있는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 시리즈에서 자신과 일로나 스톨러(Ilona Staller)의 적나라한 성행위를 평면과 입체로 표현한 작품을 만들었다. 또 영국의 현대미술작가인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은 작은 텐트 안에 자신과 잠을 잤던 102명의 이름을 아플리케로 새겨 '나와 함께 잠을 잤던 모든 사람들(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냈다.
“미술 작품은 그 작품 자체에 어떤 정해진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보는 감상자인 사람들의 내면에서 의미가 정해지는 것”이라는 제프 쿤스와 “나의 삶이 곧 예술이고 나의 예술이 곧 나의 삶”이라는 트레이시 에민, 그들은 예술이란 우리의 사소한 일상과는 거리가 먼 어떤 고귀하고 다가가기 어려운 무엇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일상생활의 한 조각 자체가 예술로 승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제프 쿤스의 풍선을 꼬아 만든 단순한 형태의 작품인 '풍선 강아지'가 생존 작가 작품 경매가의 최고액인 626억으로 낙찰 받는 이 시점에서, 어떤 것은 고급이라서 가치 있고 어떤 것은 저급하기 때문에 가치 없다고 말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혹 누군가에게는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의미일 수 있기에, 예술의 한 부분, 나아가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여러 형태로 존재하는 것일 뿐, 그 우열을 가릴 수는 없는 것 같다. 앞서 말한 여러 커피문화도 그리고 미술작품들도 일상의 사소함일지언정 그 자체가 의미를 주고 행복을 준다면 그 자체로 중요한 문화고 예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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