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이나 귀촌을 하면서 비교적 커다란 규모의 농장을 꾸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텃밭을 가꾸면서 지내고 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고 도시 생활에 익숙한 분들도 작은 주말농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농작물을 가꾸는데 재미를 붙이곤 한다. 한 때는 할 일이 없으면 농사나 짓는다고 하는 푸념어린 말들도 있었지만 농사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녹록지가 않다.
어릴 적부터 농사일에 대한 경험이 없으면 농사일은 재미삼아 입에 올릴 정도로 쉬운 일이 아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논, 밭의 생리나 농작물의 특성, 언제까지 씨를 뿌리거나 심어야 하는지, 물을 좋아하는 농작물인지 아닌지, 어떤 흙에서 잘 자라는지, 어떤 연장으로 어떻게 작업을 해야 하는지 등등 도시생활에서는 생각지 못했던 소소한 일들이 많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농작물의 특성에 따라 씨 뿌리는 시기와 심는 시기를 잘 맞추어야 하는 일이다. 물론 경험이 많은 분들이라면 농사일이 몸에 베어있으니 때를 어기지 않을 수 있지만, 아무리 경험이 많은 분들이라 하더라도 더 경험이 많은 분들께 여쭙거나 달력에서 절기를 확인하곤 하여 때를 잃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그것은 민간에서만 했던 일이 아니었다. 임금님의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하늘을 잘 살펴 백성들에게 농사 때를 잘 알려주는 일이었다. 농경사회에서 천문 기상학이 유독 발달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에서였다.
농사일 자체가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루는 바탕이었고, 농부가 하늘 아래 가장 큰 근본(農者天下之大本)이 되었다. 농사를 잘 짓기 위한 여러 가지 묘책들이 궁구되었고, 집집마다 농사 때가 자세하게 기록된 농사력이 있었다. 지금의 달력은 날짜 위주로 되어있지만 농사력 에는 절기를 기본으로 하여 농작물에 따른 파종기, 거름주기, 물 관리하기, 벌레잡기, 수확하기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 가정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는 지역의 유명 인사들이나 유관 기관에서 만들어 배포한 1년 12개월 365일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커다란 농사력이 붙어있었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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