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백범일지>와 독립기념관의 <항일 의열투쟁사>에 기록된 매헌 윤봉길 의사의 이야기다. 중국 청도의 세탁소를 거쳐 상해의 홍구시장에서 채소장수를 하던 윤봉길은 백범의 한인애국단에 가입해 홍구공원 거사를 도모하였다. 거사 일정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자 채소장수 청년은 마땅히 나라를 위해 죽을 자리를 찾았노라며 더불어, 가슴에 한 점 번민이 없어지고 편안해졌다고 고백한다. 오히려 호랑이 백범이 윤봉길을 태운 차가 4월 29일 아침 홍구공원으로 질주할 때 목이 메어 울먹였다. 채소장수 윤봉길이 던진 물병 폭탄에 시라카와 대장을 비롯한 불의와 침략의 원흉들이 여러 명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었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윤봉길의 의거로 인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인에 대한 중국의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한 획을 그은 채소장수 윤봉길은 충청도 예산 사람이었다.
며칠 전, 서울에서 발행되는 한 신문은 '충청도가 어떻게 대한민국을 웃겼나'라는 기획기사를 실었다. 인구수는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작으나 유독 '웃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희극인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다고 전했다. 충청도에 희극인이 많은 까닭을 어떤 이는 분쟁이 다발하면서 생겨난 은유적이고 에두르는 표현이 몸에 밴 것이라 하고 다른 이들은 여유와 긍정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아마도 맞을 것이다. 필자는 충청도에 '웃기는' 희극인이 많은 이유를 하나 더 보태려고 한다. 남을 웃기는 충청도 사람도 많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독립투사·의사·열사가 유난히 많은 지역도 충청도이다. 채소장수 윤봉길을 비롯 신채호·한용운·유관순·김좌진·서재필·이상재·조병옥·이종일·이범석·이동녕·이상설·홍범식 등을 비롯한 여러 분들이 충청도에서 나고 자랐다. 충신으로 일컫는 최영·성삼문·김종서·계백의 고향도 충청이다. 나지는 않았어도 충무공은 충청 아산에서 성장했다.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겠지만, 연말연초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른바 '교학사 교과서 파동' 때 다른 지역과 달리 충청에서는 그 교과서를 채택하여 시비가 벌어진 학교가 단 한 곳도 없었다. 필자는 그 때, 든든히 아침을 먹고 논밭으로 일을 나가는 일상의 농부처럼, 그저 물병과 도시락을 어깨에 메고 태연히, 소리없이 홍구공원으로 길을 떠나던 채소장수 윤봉길을 떠올렸다. 저마다 물병을 하나씩 마음에 메고 살아가는 채소장수들의 충정의 성벽은 조용하되 두텁고 촘촘해 보였다. 충청에 개그맨이 많을 뿐만 아니라 독립투사가 그보다 더 많은 것은, 남을 웃기되 자신은 웃지 아니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되 표내거나 사익을 구하지 않으려는 마음 다스림, 즉 '평정심' 때문이라고 본다.
불의와 부정과 부패의 잔칫상에 물병 던지는 일은 언론의 사명이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사익을 추구하려는 정치인과 합리적이지 못한 정책과 불통의 벽을 높이 쌓는 지역의 관료들을 향해, 언론이 평정의 마음으로 물병 던지는 채소장수가 되어 주기를 감히 기대한다. 언론보도가 외려 불공정하다거나 관청과 유착되어 있다는 이유로 물병 세례를 받는 일만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물병 던진 채소장수의 후예들이 저마다 마음에 물병 하나씩을 메고 살아가는 평정심의 지역일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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