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한수 우송대 사회복지아동학부장 |
만만한 게 교복이었다. 교복바지를 스타킹처럼 줄여 입은 남학생들은 인형처럼 삐걱거리며 걸어 다녔다. 바지춤을 내려 천천히 앉지 않으면 옷이 찢어지기 일쑤였다. 특히 가랑이 부분이 터지는 날엔 하루 종일 망신을 당해야 했다. 그래도 고통이 뒤따라야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바지를 5통 반까지 줄였던 한 후배 녀석은 발에 비닐봉지를 신고 발목을 넣었다. 벗을 땐 바지를 다 뒤집고 발목을 젖히는 불편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지퍼를 달았으면 편했을 텐데. 그러나 그때 그런 생각을 실천한 사람은 없었다. 아무나 입는 건 멋이 아니니까.
요즘 학생들도 비슷할 것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노력과, 또래집단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해 친구를 필사적으로 모방하려는 모순적인 심리의 융합이 사춘기의 특징 아니던가. 이 사춘기의 욕망이 학교라는 폐쇄적인 사회 속에서 독특한 집단행동으로 발현된다. 이 또래집단은 교육제도의 압박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방주이고, 유행은 그 탑승권이다.
청소년 흡연 문제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경쟁이 일상이 된 교육제도 안에서, 담배는 그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청소년 인기상품'이 되어 버린 건 아닐까? 요즘 청소년 흡연자들은 주민등록증 제시 없이 담배를 살 수 있는 상점과 담배 피우기 좋은 장소의 정보를 공유한다. 담배를 판매하는 편의점 계산대는 오락실을 방불케 할 정도로 화려하고 담뱃갑의 디자인은 갖고 싶을 만큼 예뻐서, “나도 한 번 피워볼까” 하는 호기심이 생길 만하다. 견물생심 아닌가.
바지 통을 줄여 입는 유행은 일견 귀여워 보이기라도 하지만, 청소년 흡연의 확산은 도저히 그렇게 봐 줄 수가 없다. 몸에 붙는 바지를 입는 불편함은 일시적인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 흡연은 자신의 미래를 깎아먹는다. 성인에 비해 담배로 인한 피해 또한 막심하다. 16세 이전에 흡연을 시작하면 수명이 15년 단축되고, 폐암 발생이 비흡연자에 비해 18배나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청소년 흡연율은 10년째 상승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2012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중·고등학생의 흡연율은 12.1%로 OECD 1위다. 흡연 사실을 공공연히 밝힐 입장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흡연자는 더 많을 것이다. 얼마 전 만난 한 교육계 인사는 대뜸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철저히 금연교육을 펼쳐야 한다. 중학교 1학년이면 늦고, 고등학생쯤 되면 피우는 학생과 안 피우는 학생이 확연히 갈린다”고 잘라 말했다.
청소년이 우리나라의 미래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국민 모두가 청소년 흡연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함이 마땅하다.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제도로 인해 학생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일 것이나, 당장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청소년들이 손에서 담배를 떼어 내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자면 우선 담배회사의 전방위적인 마케팅부터 규제해야 한다. 강력한 담배규제 정책이 유럽연합을 비롯한 선진국의 일반적인 추세다. 우리도 담뱃갑 포장의 절반 이상을 경고문구와 사진으로 채우고, 담배에 각종 향과 색소를 첨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어른들도 금연을 실천하여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담배는 기호품이 아니다. 청소년 흡연은 그 관용의 틈에서 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졸업과 함께 교복은 장롱 한 구석으로 들어가지만, 5통 반 바지는 치기 어렸던 시절을 되새겨주는 즐거운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꼭꼭 숨겨가며 몰래 피웠던 담배는 평생 몸속에 남아 고통을 줄 것이다. 부디 아름다워야 할 추억을 후회로 물들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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