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의곤 대전노숙인지원센터소장 |
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글쎄…. 이건 그냥 곧 잊어질 하나의 사건이고 복지축제일 뿐이다. 축제의 중심은 언론이다.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 언론에 밝혀지고, 아직 우리나라에 이런 복지소외계층이 있느냐는 듯 화들짝 놀라 그동안 찾지 못했던,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안에서도 밖에서도 열기 힘든 튼실한 잠금장치를 가진 복지제도 안에 갇혀있던 소외계층들을 찾아낸다며 '수급자 정례조사'로 수급자 줄이기에도 벅찬 일선 공무원들에게 한쪽에서는 줄이고 한쪽에서는 찾아내야 하는 괴로움을 주고, 정당에서는 경쟁하듯 법안을 만들어 내면서 '이것이 복지국가 대한민국이다'를 보여주는 것을 피날레로 잠깐 동안 풀어졌던 잠금장치는 조만간 잊어질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에 그 축제의 중심에 있는 언론에서 또 다른 사건이 밝혀지면 이 축제는 다시 화려하게 부활할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는 필자의 과한 비관적 조망이 문제라고 생각되기도 하겠지만 필자의 비관성에 굳이 변명하자면 노숙인복지 현장에서 이런 일들은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기에 과연 정부의 이런 이벤트성 움직임이 실효성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강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20대 중반의 여성이 필자가 일하는 노숙인종합지원센터로 찾아왔다. 미혼모 시설에서 아이를 낳고 입양한 후에 퇴소했지만 갈 곳이 없어 찾아왔다고 했다. 근로능력이 있는 대상이기 때문에 수급자가 될 수도 없었고, 보호가 가능한 여성시설을 찾아봤지만 찾을 수가 없어 주거지원을 통해 쪽방을 얻어줬다. 하지만 2주가 채 되기도 전에 그녀는 두 평이 안 되는 월세방에서 목을 매달아 짧은 생을 마감했다. 화장실 삼남매 사건 발생 1년 쯤 후의 일이다.
며칠 전 고령 노숙인이 센터로 왔다. 고령에 치매증상까지 보이는 분이었다. 이런 분의 경우 차라리 지원받을 수 있는 근거가 명확하기에 그다지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신원조회를 한 이후였다. 지문조회를 하고 보니 가족들에 의해 사망신고가 되어있었다. 가족을 찾아 연락했지만, 가족들은 모르는 사람이니 다시 연락하지 말라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결국 구청, 시청의 노숙인 담당자와 함께 사회보장번호 발급, 긴급지원제도, 노숙인 요양시설 등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적 근거나 시설을 찾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지만 사망자 신분이기 때문에 제도적 지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복지사각지대 발굴조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렇게 결국 제도적 보호의 범주 안에 포함되지 못하는 이들은 비참한 삶을 이어가거나 극단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복지사각지대 안에서 복지서비스를 찾아내야 하는 필자에게 과연 이벤트와 같은 이런 일들이 얼마나 반가울 수 있을까? 모 정당에서 준비한다는 세모녀법이나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제도화가 되면 이런 필자의 비관적 상상이 해소될 수 있을까? 얼마 전 장애인단체와 빈곤단체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없는 '새정치'는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새정치민주연합 '세모녀 법'에 대한 비판'이라는 제목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가 아닌 '완화'의 조치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필자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과연 제도가 이런 사각지대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다.
법과 제도는 기본적인 안전장치이며, 보호수단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집행하는 일선 공무원에게는 법과 제도에 대한 유연적 해석과 융통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제도가 마련된다 하더라도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일선 공무원들에게 '부정수급자'를 '적발'하는 업무가 아니라 '복지 약자' 발굴을 위한 유연성과 융통성을 쥐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봄날을 수놓은 화려한 벚꽃이 지고 있다. 그리고 봄날의 복지축제도 곧 사그러질 것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쉽게 잊혀지는 이벤트가 아니라 오랜 관심으로 남아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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