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원조, 영웅의 바탕에는 마을 어른이 계셨다. 마을 어른은 배움이나 식견의 폭이나 깊이에 상관없이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이신 분이었다. 아무개네 할머니, 할아버지면 족하였다. 아무개네 할머니, 할아버지는 살아오시면서 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산지식의 보고 그 자체였다. 그 분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삶의 지혜와 슬기로 가득 차 있었다. 마을과 가정의 애경사와 같은 큰일에서부터 어린아이의 배앓이 같은 작은 일까지 모든 일에 대하여 경험으로 축적된 지혜와 슬기를 베풀어 해결해주시곤 하였다. 때로는 간호사, 때로는 의사, 때로는 상담사, 때로는 수리공, 때로는 목수 등등의 역할로 어려움을 헤쳐나아가거나 문제를 즉각즉각 해결하는 데 더 없이 소중한 분들이었다.
아프리카 속담은 노인 한분이 돌아가시면 박물관 하나를 잃은 것에 비유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런 만큼 마을어른들에 대한 공경도 잃지 않았다. 명절날이 되면 먼저 마을 어른들을 찾아뵙고 절을 하고 덕담을 듣고자 했다. 행여 길을 가다가 마주치면 길가로 비켜서면서 마을 어른께 문안인사를 올리곤 하였다. 담배나 안경도 마을 어른들 앞에서는 함부로 피우거나 쓰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다가도 마을 어른이 나타나시면 얼른 담뱃불을 끄고 피우지 않았다. 안경도 어른들 앞에서는 얼른 벗어 감추면서 예의를 다하곤 하였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도 마을 어른이 나타나면 얼른 내려서 문안인사를 하고 마을 어른께서 저만치 지나가시면 다시 타고 가곤 하였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어른 곁을 그냥 스쳐지나가는 일은 버릇없는 짓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변했다 하더라도 어른들에 대한 공경심은 변치 말아야하겠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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