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영 계룡 신도초 수석교사 |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모든 정성과 최선을 다 하리라 생각하며 교육에 대한 열정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드디어 천운이었는지 다시 교단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10여 년의 길고 긴 공백기를 보내고 그리던 교단에 다시 발을 올려놓은 곳.
노랑, 연두, 초록, 분홍, 색색이 둘러싸인 자연 속에 보라색 꽃 잔디가 꽃 잔치를 열고, 호수 속에 연꽃이 그 자태를 자랑하고, 아카시아의 향이 무척 진했던 그곳.
깡충깡충 한가롭게 뛰어다니는 산토끼를 보며,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산고개 고개를 나 혼자 넘어서/ 토실토실 알밤을 주워 올테야
'산토끼' 동요를 지으셨다는 이일래 선생님의 시비가 있는 경상북도 창녕군 이방이라는 곳이었다. 지리적으로는 생소했지만 설렘과 기대 속에 내가 만난 4학년 15명의 아이들은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에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 작지만 새까만 두 눈 속에는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중에 시골에 어울리지 않게 유난히 얼굴이 하얀 상석이라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일기장을 내고는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일기장을 기다리던 아이….
빨리 선생님의 답신을 받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던 그 모습! 이름을 부르면 빼앗듯이 일기장을 가져가서 선생님이 써 주는 글을 수줍은 얼굴로 읽던 그 아이. 어디에서 어떤 인물이 되어 있을까? 아마도 지금은 아기 아빠가 되어 있겠지?
여자 아이인데도 유난히 목소리가 컸고 씩씩해 반장을 했던 정영이는 지금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작지만 깜찍했던 영옥이, 할머니와 살며 세수도 잊고 오던 아이, 부모의 결별로 친척집에 얹혀살던 아이, 아이들에게 심술만 부리며 무척 속을 썩이던 아이도 있었다. 1년을 같이하고 이곳으로 떠나 올 땐 무척 서럽게 울던 그 아이들을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하며 나를 되돌아본다. 가끔 편지를 보내오던 그 아이들에게 난 삶의 무게에 눌려 정성을 다하지 못했었다는 생각해 본다.
사소한 말 한마디, 지나가는 눈짓 하나에도 울고, 웃을 수 있는 여린 가슴을 지닌 그 아이들에게 나는 웃음을 잃지 않는 행복한 하루를 선사했던가? 왜? 책을 읽는 기쁨을 선물하지 못했던가?
칭찬을 목말라했던 그 아이들에게 왜 더 많은 칭찬을 못 해 주었을까? 아이들 하나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나를 자책해 본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난 더 큰 사랑과 더 큰 열정으로 더 많은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싶다.
연륜은 쌓였지만, 한없이 모자란 듯한 스승의 길! 30여 년을 교단에 머무르며 아이들에게 다 나누어 주지 못했던 사랑! 얼마 남지 않은 교직생활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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