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도묵 국제라이온스 356-B지구 총재, 대전·충남 경영자 총협회장 |
꽃을 피우고, 열매를 그리며, 먼 미래를 향한 설렘이 찾아오는 봄에는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그 설렘 속에서 무수히 많은 마음이 들로 산으로 나가 나무를 심는다. 흙구덩이를 파는 팔뚝에는 힘이 들어가 있고, 뭔가 모를 기대에 충만 되어 있다. 굳이 그 나무가 되돌려 줄 보답을 헤아리지 않는다. 이 나무가 커서 우리에게 그늘과 열매를 주려니 생각하는 바가 없다. 오직 잘 자라 주기만을 빌 뿐이다.
이 마음은 자신이 베푼 것의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는 데에서 너그럽게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자칫 심는 일로 마무리되는 안타까움을 초래할 수가 있다. 나무는 심는 일도 중요하지만 계속해서 돌보아줘야 한다는 또 하나의 의무를 주문하고 있다. 봄이면 꽃비 속에서 많은 사람이 나무를 심고 흡족해하지만, 그 비가 그친 후에는 나무를 돌봐 줘야 한다. 구덩이를 파고 흙을 고르는 정성도 필요하고, 새로운 삶터에 옮겨와 적응하려는 나약한 나무를 꼼꼼히 살피는 관심과 배려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생명 있는 것에 관심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책무를 다한 것이 된다.
우리는 산과 들에 나무를 심는 사람을 무수히 보아 왔다. 그러나 심은 나무에 물을 주고 끝없는 사랑을 베푸는 사람을 발견하기는 그리 흔치 않다. 하나의 생명체를 내 곁에 두려는 마음이었으면 그만한 수고가 따라야 한다. 뭔가 생각이 있어 나무를 심었으면 끝까지 보살피는 마음이 진정한 사랑이다. 나무들도 관심과 사랑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나무에 주는 사랑에도 지혜가 요구된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오히려 나무에 해가 되기도 한다. 아직 뿌리가 잡히지 않은 나무에 많은 거름을 얹어주거나 계속해서 물을 주어 뿌리의 착근에 장애가 된다면 그것은 아니 보살피느니보다 못하다. 나무가 요구하는 적합한 사랑과 배려가 따라야 한다. 그리고 나무에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는 관심과 슬기가 늘 필요하다. 나무는 심는 것 이상으로 사랑으로 보살피는 손길이 있을 때에 제대로 클 수가 있다.
사람도 매일반이다. 하나의 나무를 보살피는 정성처럼 사람을 길러내는 데에도 정성이 필요하다. 제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는 막연한 신뢰가 무관심으로 아이들을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뭔가 생각이 있어 자식을 두었으면 끝까지 보살피는 마음이 부모에게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즈음 산업화로 일에 치이다 보면 그런 마음을 내려놓는 경우가 간혹 보인다.
한국의 가정은 실종됐다고 지적하는 소리가 들린다. 통계상으로는 외국의 경우보다 한국인의 노동시간이 500시간 많다고 한다. 이렇게 일에 치이다 보니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의 부족으로 가족 간의 유대가 무너졌다는 지적도 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 왔으니, 이제는 가족도 바라보고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일이다. 가족 간에 대화 한 마디 없는 가정은 무너진 가정이다. 자식은 낳아 놓은 것으로 임무가 끝나는 것이 아니고, 끝없는 사랑으로 보살펴야 한다.
제 배 아파 난 아이라 해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나친 과잉의 사랑이 오히려 아이에게 누가 되는 경우도 있다. 진정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그 아이에게 약이 되는 절제된 사랑이다. 나무를 심는 이 계절에 육림을 생각한다. 심는 것으로 소임을 마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커다란 관심으로 사랑을 베풀어야 함도 기억한다. 또 나무를 정성껏 기르듯 자녀의 양육에도 정성을 다할 것을 주문해 본다.
이 세상에서 사람을 길러내는 일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 우리의 다음 세대를 교육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 해결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돼 한다. 실종되어가는 가정을 복구하는 노력으로 이 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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