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
1전시실에는 이재호 작가의 '주관과 객관의 변주 혹은 공존'이라는 제목으로, 사실적이면서도 작가 자신만의 느낌으로 또 다르게 그려낸 수묵담채화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묵을 사용하면 어쩐지 어둡고 탁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묵의 색깔이 더해져 보다 선명하고 자연적인 느낌이었다. 자연이 사람들 간의 수많은 이해관계와 얽히고설킨 감정선들로 가득 차고도 모자란 인간사로부터 벗어나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에, 작가는 그런 자연을 수없이 보고 느끼고 화폭 속에 그린 걸까. 자연은 인간에게 있어 멀어져서는 안 되는, 공존의 관계라는 것을 작품들을 통해서 또 한 번 깨달았다.
이어지는 2전시실에는 유동주 작가의 '생명의 서사, 물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여러 설치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모든 비밀은 물속에 있다'고 말하는 그 답게 작품들은 물과 관련되어 있거나 물을 통해서 드러나 있었다. '이동하는 물, 과거, 현재, 미래'는 벽을 사이에 두고 세 개의 배 안에 물이 채워져 있고 그 안에 다른 영상이 틀어져 있는 형태였으며, '북극권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의 꿈'은 자신들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 환경파괴도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과 그와는 달리 살아온 자연과 삶의 방식도 고수하고자 하는 소수민족들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또한 '물-행위 설치 프로젝트'는 설치미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행위를 접목시켜 이제껏 보지 못한 독특한 미술의 형태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3전시실에는 정장직 작가의 '행운을 부르는 픽토그램'이라는 제목으로, 단순하면서도 추상화되어있는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픽토그램'이란 사물, 시설, 형태 등을 일반 대중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상징적인 그림으로 나타낸 일종의 그림문자를 일컫는 말로써, 작가는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주역'의 자연이치를 나타내는 8괘로부터 다양한 얼굴형상을 창작해 우주의 만물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얼굴 같지 않으면서도 하나하나 표정이 살아있는 것 같은 다양한 얼굴의 모습인 픽토그램으로 작가는 보다 친근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마지막 4전시실에는 김남오 작가의 '동북아 문명의 공통감각으로서의 예술'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중국, 일본의 동일문화권에서의 차이와 공통점을 미술로 나타내 전통적이고 친숙한 형태를 보여주는 반면, 폐기물들을 이용해 현대사회의 삭막함과 무자비함을 폭로하고 있다. 서양문화권와 달리 동양문화권은 예부터 자연과의 합일을 중시했음에도 산업화의 바람으로 너도나도 자연을 파괴하면서까지 개발만을 보고 달려가는 지금, 희망을 되찾기 위해서는 작가가 그러한 것처럼 다시 한 번 동북아사상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상 4명의 작가들 모두 대전을 기반으로 한 작가들이지만, 공통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지고 각자 자신만의 길을 걸어 나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사고와 표현방법의 차이일 뿐, 그들은 지금 이 세상을 작품으로 표현함으로써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본 세계를, 자신들만의 표현 방법으로 미술을 해 나가는 그들과 같은 작가들이 있기에 대전, 아니 지역을 초월하는 현대미술은 지금도 앞으로도 멈추지 않는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쳤다면 잠시 예술로 눈을 돌려보는 건 어떨까. 작가가 그려낸 세계를 통해 현실을 돌아보고 더 나아질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하는 순간, 갑작스레 불어오는 따뜻한 봄바람처럼 생기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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