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다니는 행길의 가로수들도 봄꽃을 뽐내고 있지만 고즈넉한 산 속의 절이나 풀 숲, 바위틈에서 만나는 꽃들은 봄의 정취를 한껏 더한다.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풀이나 나무의 꽃들이 산속의 절에서는 모두 피어나 상춘객들을 반긴다.
봄꽃들을 둘러보면서 시적인 감동을 맛 볼 뿐만 아니라 제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법당 앞에서면 종교적인 심성도 발동하게 된다.
산속의 절 뿐만 아니라 궁궐의 건물, 각 지역을 대표하는 출입문을 보면 추녀와 문 사이에 큰 글씨를 쓰고 새겨서 걸어 놓은 기다란 나무판을 볼 수 있다. 대부분 한자어로 되어있고, 한자어의 뜻이 바로 그 건물을 상징하고 있다. 과연 이 나무판은 왜 걸어놓는걸까? 그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의아한 경우가 많지만 늘상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기 일쑤다. 이 나무판을 편액이라 한다.
이 편액은 건물의 얼굴이다. 건축물을 다 지은 뒤에 건물의 쓰임새에 어울리는 좋은 뜻의 글귀를 찾거나 건축물 안에 위치하는 주인공을 뜻하는 글귀를 찾아 인품과 식견이 뛰어난 분들의 글씨를 받아 새겨서 건다. 나라의 임금님께서 직접 이름을 짓고 써 내려준 편액을 사액(賜額)이라고 한다. 편액글씨는 다른 글씨와 달리 건축물의 얼굴이기 때문에 건축물에 어울리도록 꼭 찬 느낌의 정중한 글씨체로 써서 건축물을 위엄있게 한다.
건축물을 사용하는 주인공과 쓰임새에 따라 전(殿), 당(堂), 합(閤), 각(閣), 재(齋), 문(門), 루(樓), 정(亭) 등으로 표현한다. 건축물을 완성한 뒤에 편액을 달아야 비로소 모든 건축행위가 끝나게 된다. 편액은 건축물을 대표하고 상징하기 때문에 밖에서 보아서 건축물의 정중앙 이마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를 잡아서 모든 이가 경외감과 함께 우러러 볼 수 있도록 한다.
편액과 함께 기둥에 거는 좋은 글귀들인 주련(柱聯), 건물내부에 시인묵객들의 감상을 적은 시판(詩板)이나 문판(門板) 등을 걸기도 하는데, 이들 모두를 뭉뚱그려 현판(懸板)이라고도 한다. 편액, 주련, 시판이나 문판에 새겨져 있는 주옥같은 글들에 깃들어 있는 슬기들을 되새김하면서, 마음 한 켠에 나와 가족과 나라와 겨레의 꿈과 희망을 새겨보면 어떨까?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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