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호 대덕클럽 회장·한국화학연구원 전문위원·UST 교수 |
장철균 전 스위스 대사는 스위스에서 배운다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알프스의 진주라고 불리는 스위스의 모습은 하늘이 내려준 혜택이 아니라 스위스 사람들이 스스로의 손으로 건설한 지상의 낙원이었다.'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정학적 여건과 자원이라고는 사람 밖에 없는 스위스와 우리나라는 유사한 점이 많기에,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는 데 스위스가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저자는 스위스의 생활과 경험을 통해 모든 분야에서 다양성을 갖고 있으면서 정치적인 분열이나 노사분규가 없고 사회적 통합성을 이루고 있는 스위스의 모습을 깊이 있게 보여준다.
스위스는 독일계, 프랑스계, 이탈리아계 등이 모여 만든 다민족 국가이고 사용하는 언어도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고대 로마어 등 4개나 된다.
그리고 미국의 주와 같은 '칸톤'들이 모여 스위스를 구성한다. 이렇게 구조적으로 깨지기 쉬운 다민족 다문화로 형성된 스위스가 국민통합을 이루어 지구상에 가장 높은 소득과 삶의 질을 영위하는 모범적인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성 속의 통일성'으로 대표되는 스위스 특유의 정신이 모든 시스템에서 발현되어 안정된 경제사회, 정치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불필요한 분쟁보다는 화합을 통해 다 같이 잘 사는 법을 추구하는 극히 효율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들이 보편적으로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합리적인 정신으로 주변의 4대 강국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와 같은 외세의 영향과 내부의 분열을 극복하였다는 점만으로도 현재 미묘한 국제 정세 속에 위치한 한국에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비록 지금은 우리나라가 4대 강국에 둘러싸여 남북이 대치하고 있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지정학적으로 동아시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선진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국내외 갈등요인들을 극복한 스위스의 경험은 우리에게 귀중한 자료이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머무르고 있는 우리나라가 직면한 많은 사회적 갈등과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진정한 선진국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의 스위스를 가능케 한 스위스 역사와 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
역사를 보면 한 나라가 부강해지고 잘 살게 되는 것은 그 당시 시대의 흐름을 얼마나 잘 읽고 주도적으로 다루어 왔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는 120년 전 갑오년에 구시대의 제도를 개혁하기 위한 갑오경장을 시도하였지만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고 끝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비운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 스스로 주도적으로 개혁을 하지 못하였고 반강제적인 위로부터의 제도개혁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도 작지만 강한나라로서의 목표를 가지고 국가적 내실을 쌓아가려면 전근대적이고 비생산적인 이념논쟁으로 나아갈 것이 아니라 보다 효율적인 서로간의 교집합을 찾아 긍정과 신뢰의 마음으로 협조하고 발전시켜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은 좌파나 우파가 아니라 서로 의견이 겹치는 부분과 서로 다른 부분을 찾아 토론하여 생산적으로 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합리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을 뜻한다.
한국이 합리적인 사고와 토론하는 문화를 가지고 효율적인 논쟁을 하게 된다면 스위스와 같은 선진국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 책 스위스에서 배운다를 일독하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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