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욱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대안교육센터장 |
올해 심사를 하면서 특별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새롭게 변화된 심사방식이었다. 주민이 직접 심사에 참여하는 민주적 결정구조를 위해 최근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과 유사한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인접 자치구 별로 10~20여개의 지원 커뮤니티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각자 자신들의 커뮤니티와 지원 사업에 대해 설명하면서 합격을 호소하는 방식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그 자체로 한판 흥미있는 놀이판이자 서로가 서로에게 열리는 배움의 장이 되었다. 발표를 들으면서 재미있게도 이 사업의 제목인 '부모커뮤니티 활성화 사업' 중에 각자 방점을 찍고 있는 단어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제안자는 '부모'에 방점을 찍어 사업 내용이 온통 자녀교육에 집중되어서 방과후 프로그램이나 심지어 사교육 프로그램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찾기 어려웠다. 또 다른 제안자는 '사업'에 지나치게 방점이 찍혀있어서 제출된 계획서는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제안자 자신이 하고 싶은 사업을 커뮤니티라는 외형으로 포장한 느낌이 너무 강했다. 특히 지역의 복지관이 등 기관들이 중심이 되어 제출한 제안서들은 이전에 그 기관에서 하던 사업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심사를 하면서 필자가 찍은 방점은 '커뮤니티 활성화'였다. 이 사업의 가장 큰 가치는 그것이 풀뿌리 '커뮤니티'를 발굴·육성하여 지원한다는 사실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커뮤니티가 형성될 가능성만 보인다면 그 쓰임새가 하찮아보여도 얼마든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가장 큰 반발은 '봉사'를 주제로 잡은 제안자들로부터 나왔다. 커뮤니티라면 예를들어 자기들 밥값, 찻값은 스스로 내는 것이 당연할 터인데 어찌 소외계층을 돕겠다는 자신들에게는 빡빡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저희들끼리 놀러 다니겠다는 사업에는 후한 평가를 보이느냐는 항변이었다. 물론 우리 사회에 여전히 소외된 영역이 많고, 이들을 돕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나 복지가 지나치게 '시혜'의 형태로 만들어질 경우 여러 가지 폐해가 나타날 수 있다. 수혜자가 혜택에만 의존하여 자립이 불가능하거나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늘상 존재한다. 또한 예산이 줄거나 끊기면 더 이상 혜택을 줄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결국 공적 자금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공적 자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돌봄의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느냐의 문제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풀뿌리 공동체가 만들어진다면 공공의 복지 혜택은 이를 더욱 풍성하게 자라게 할 자양분이 되지만 공동체 없이 쏟아 부어지는 공적 예산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일 수 있다. 따라서 공적자금의 일부를 지역의 풀뿌리 공동체를 발굴·육성하는데 쓰는 것은 우리 사회의 그물망을 더욱 촘촘하게 짜는 중요한 정책이 될 것이다. 우리가 동네에서 모여 재미있고 즐겁게 살다보면 그렇지 못한 이웃들에게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진화가 될 것이다. 또한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고 했을 때 그 아이를 키우는 것은 행정구역으로서의 지역이 아니라 촘촘하게 짜인 관계망이다. 대전에서도 얼마 전 '좋은 마을 만들기'라는 사업공모가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전 곳곳에서 더 많은 공동체들이 더 촘촘해진 관계망으로 신나고 즐겁게 살 수 있었으면, 그리고 그 힘으로 주변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함께 챙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