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한남대 총장 |
도법스님은 “희망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희망은 원래 어디에도 없다. 당사자가 만들면 있고, 안 만들면 없는 것이다”라고 일렀다. 한남대 캠퍼스 미술관 앞에는 묵은 매화나무 한 그루가 있어 눈발 날리는 3월 초에 제일 먼저 신춘(新春)소식을 알려준다. 대전지역 신문들이 자주 봄 소식 화보로 사진 찍는 나무다. 올해도 벌써 꽃이 피어 있다. 그래서 오늘은 봄을 맞이하는 시와 노래(迎春詩歌)로 매화송을 나누고 싶다.
①내 서재에는 한 폭의 매화액자가 있다. 그 속에 있는 상촌(象村) 신흠(申欽)의 詩다. “동천년로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오동나무는 천 년을 늙어도 여전히 노랫가락을 품고 있고)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매화는 한평생 춥게 지내도 그 향기를 값싸게 팔지 않는다) 월도천휴여본질(月到千虧餘本質: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바탕은 남아 있고) 유경백별우신지(柳莖百別又新枝: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여도 새로운 가지가 올라온다)” 이 정도는 돼야지 서로 믿고 의지하고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변덕이 죽 끓듯 하거나 조변석개(朝變夕改) 또는 어젯밤 약속하고 오늘 아침 바꿔버리는 이합집산의 사회풍조는 아무리 봐도 불안하기만 하다. 한번 결혼하면 평생 살아야 하고 한번 취직하면 종신토록 충성ㆍ봉사하는 일관성과 항상성을 매화나 오동나무에서 배우고 싶다.
②최두석 시인이 쓴 「梅花와 梅實」은 이러하다. “선암사 노스님께. 꽃이 좋은지 열매가 좋은지 물으니. 꽃은 열매를 맺으려 핀다지만. 열매는 꽃을 피우려 익는다고 한다. 매실을 보면 매화의 향내를 맡고. 매화를 보면 매실의 신 맛을 느낀다고 한다 / 꽃구경 온 객도 웃으며 말한다. 매실을 어릴 적에는 약으로 알고. 자라서는 술로 알았으나. 봄을 부르는 매화향 내를 알고부터는. 봄에는 매화나무라고 부르고. 여름에는 매실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콩과 콩깍지가 본디 한 몸이듯이 매화도 '梅'요, 매실도 '梅'다. 그러니 굳이 매화와 매실을 나누거나 서로 견주어 무엇 하겠는가. 마음과 몸을 합해서 하나의 '사람'으로 살면 될 것을….
③옛 어른들도 매화를 좋아하긴 매일반이었나보다. 이인로(李仁老)의 「매화」는 이러하다. “선녀의 얼음살결 눈(雪)으로 옷 해입고 / 향기로운 입술로 새벽이슬 마시었네 / 속된 봄꽃들의 붉은 빛에 물들세라 / 신선고장 향하고자 학을 타고 나는 듯 ” 퇴계 이황의 「陶山月夜詠梅」도 들어보자. “뜰을 거니노라니 달이 사람을 좇아오네 /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고 /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기를 잊었더니 / 온 가득 향기 스며 달 그림자 몸에 닿네” 신위(申緯)는 “매화 옛 등걸에 춘절(春節)이 돌아오니 / 옛 피던 가지에 피엄 즉도 하다마는 / 춘설(春雪)이 난분분(紛紛)하니 필동말동 하여라”라고 노래했다. 짧은 시 한 두 구절에 옛 선비들의 정서와 생각을 담았으니 매화송을 통해 몇백년 선후배가 교감을 하게 된다.
④김석철 시인의 「매화」도 절제된 시어 속에 압축된 정감이 녹아있다. “여미고 다독이며 감내한 매운 시련 / 드디어 벙글더니 어느새 지는건가 / 어렴풋 가늠해보네 피고 지는 저 무상(無常)” 더 옛날 옛적의 매화송으로 되돌아가볼까. 고려 말 이색(李穡)은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레라 /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 석양에 홀로 서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안민영(安玟英)은 “바람이 눈을 몰아 산창(山窓)에 부딪치니 / 찬기운 새어들어 자는 매화를 침노허니 / 아무리 어우려허인들 봄 뜻이야 아슬소냐 // 어리고 성근 매화 너를 밋지 안얏더니 / 눈기약(期約) 능히 직켜 두 세 송이 푸엿구나 / 촉(燭)잡고 갓가이 사랑할졔 암향부동(暗香浮動)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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