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락]줄탁동시(啐啄同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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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락]줄탁동시(啐啄同時)

[교육단상]최유락 청양 청송초 교사

  • 승인 2014-03-18 14:10
  • 신문게재 2014-03-19 16면
  • 최유락 청양 청송초 교사최유락 청양 청송초 교사
▲ 최유락 청양 청송초 교사
▲ 최유락 청양 청송초 교사
새 출발!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의 아침,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모여든다. 어느 분이 새 담임선생님인지 궁금한 게다. 그러나 시업식에서 담임선생님이 차례대로 발표될 때의 기다림과 기대를 꺾을 수 없다. 짐짓 모른 체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벌써 정해 놓았다. 시업식과 입학식을 위해 전교생이 다 모였다. 이날처럼 학생들 눈망울이 초롱초롱하고 반짝거릴 때가 있을까! 담임선생님이 발표되는 순서가 되자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탄성이 들린다. 그 학생들과 새 교실에서 첫 수업이 시작된다. 청송초등학교의 3월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다음 날이었다.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담임을 했던 제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뭔가를 물어보려고 전화한 참에 자기가 아는 제자들 소식을 들려준다. 그 중 한 제자의 이야기가 통화가 끝난 뒤에도 머릿속에서 쉬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30대 남자 미용사다. 유명한 CF 촬영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머리를 손질해 주는 나름 알아주는 유명한 미용사다. 나는 초등학교 이후로 그를 보지 못했다. 그는 짧은 머리에 얼굴이 까만 학생이었다. 운동을 잘했다. 학교 대표로 육상대회에도 참가하였고, 체육 시간이 되면 열심히 뛰어다녔다. 항상 웃는 그를 친구들도 좋아했다. 공부를 잘하진 않았다. 초등학교 때 그의 모습은 그랬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선생님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았고 학교에도 가끔씩 가지 않았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도 없었다. 한 마디로 그는 골칫거리 학생이었다.

선생님은 그를 미용학원에 등록시키셨다. 수강비를 낼 만큼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도 않았다. 선생님은 학원의 담당자에게 사정을 말씀하셨고, 수개월 내에 미용자격 시험에 합격하는 조건으로 학원 수업을 받게 되었다. 그는 열심히 노력하였고, 수강 학생들 중에서 유일하게 시험에 합격하였단다. 그 결과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헤어 디자이너가 되었다. 같은 교육자로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그 선생님이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지난해 가르친 학생 중에 내가 선생님으로서 하는 말과 행동에 도무지 반응을 보이지 않는 학생이 있었다. 학습 준비물도 가져오지 않았고 숙제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정통신문도 부모님께 보여드리지 않았다. 수업 중에는 초점 없는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학생이 옛날처럼 많지 않은 농촌의 작은 학교에서는 이렇게 담임에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힘들다.)

날씨가 화창한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미술 시간에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도록 하였는데 한 30여 분을 결정하지 못하더니,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와 묻는다. “선생님! 공룡 그려도 돼요?”

“물론이지. 필요하면 컴퓨터에서 필요한 자료를 찾아보렴.”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를 참고하여 하늘을 나는 붉은 공룡을 그렸다. 완성된 작품을 환경 판에 걸어놓았다. 내가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그림이었지만 그는 그 그림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 그의 수업 태도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숙제도 했고 수업 시간에 대답을 곧잘 했다. 놀라웠다.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는지 공룡 그림 외에는 딱히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변화되고 있었다.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올 때 어미 닭이 밖에서 함께 알을 깨뜨린다고 한다. 병아리는 3주가 지나면 신호를 보내지만 사람의 변화는 언제인지 알 수 없고 사람마다 달라 교육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또한, 사람마다 처방전이 다 같지도 않다. 그래서 더 어렵다. 요즘 같은 시대에 교사가 가르치는 일에 신뢰를 보내는 제자와 학부모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만, 그래도 가끔씩 연락하는 제자들과 오늘도 수업 시간에 나를 바라보고 내게 신호를 보내는 병아리 같은 제자들을 위해 힘을 내야겠지. 본인이 스스로 자랑하고 싶은 말을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칭찬이란다. 새봄이 시작되는 3월 아침, 내게로 다가오는 학생들을 잘 살펴 변화의 꽃망울을 터뜨려주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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