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준 건양대 교양학부 교수 |
필자가 가르치는 대학도 인문학자, 경영학자, 의학자 등이 모여 죽음학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죽음을 맞이함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가족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사회와 국가는 죽음에 어떻게 대비하고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인지 등등 청년 학생들이 인문, 사회, 경제 등 다각도로 죽음을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이처럼 죽음학 강의에서 다룰 문제들을 두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
첫째, 죽음은 개인의 일만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 차원에서 대비해야 할 문제다. 어찌 보면 죽음은 가장 개인적인 문제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죽음은 개인의 일만이 아니다. 나와 내 주변의 모든 사람과 관련된 사회적인 일이다.
개인이 죽어가는 과정은 일에서 은퇴하고 노화되어 운동을 즐길 수 없게 되고 병들어 자리에 누워 지내다가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그런 과정이다. 실제로 많은 노인들이 가난하고, 아프고, 쓸쓸한 생활을 하다가 죽음을 맞는다. 특히 우리나라 같이 중진국의 경우 산업화로 가족은 해체되고, 또한 선진국처럼 가족을 대체할 새로운 사회보장조직이 아직 활성화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노인들은 죽음을 함께 해줄 사람도 거의 없고, 병원비 등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여건도 부족하다. 역시 죽음은 사회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다.
둘째, 죽음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운다. 죽음에 관한 철학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살아있는 이상 죽음은 아무도 경험할 수 없고, 누구든 죽음을 경험한 이상 그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 길이 없다. 그러니 죽음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논의하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다를 바 없는 일이다. 다만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고자 한다면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태도는 현실과 삶에 대한 허무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자 하는 대긍정의 인생태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노년이 되어도 죽음보다는 운동과 자연식 등 건강하게 사는 법, 연금관리 등 노년을 고생하지 않고 즐겁게 사는 능력을 더욱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 더욱 쓸모 있는 노력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건강하고 아무리 부자라도 언젠가는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성찰과 인식이 필요하다.
죽음을 맞는 그날, 그래도 나의 인생은 한바탕 살만했어,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기쁘고 보람있는 일도 많았다고 여길 수 있다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죽음을 맞는 자리에서 자기 삶의 의미있는 일이란 무엇보다 자신이 자랑스럽고 보람있었던 일이 아닌가 싶다. 이로써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에 대한 희망과 사랑과 감사로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된다. 이처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덧 현재의 삶을 이야기 하게 된다. 잘 죽는다는 것은 결국 잘 산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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