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미술의 흐름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대전미술의 지평'전이 오는 30일까지 열린다. 지난달 28일 개막한 '대전미술의 지평'전은 이재호, 유동조, 정장직, 김남오 등 4명의 작가가 참여해 한국화, 사진, 회화, 설치, 영상, 판화 등 100여점을 선보인다. 참여작가들은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반 대전에서 공부하고 터전을 잡았거나 유학 후 대전에 정착해 활동을 하고 있는 대전미술 2세대라 부를 수 있다. 이번 전시회는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4명의 작가들의 독창적인 창작세계를 연대기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각자의 고유한 작업구조와 방법론, 나아가 그들의 사유와 성찰을 살필 수 있다. 동시에 대전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창작활동을 이어온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1980년대 이후 대전미술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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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호 '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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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주관과 객관의 변주 혹은 공존'=“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자신의 느낌을 받아들이며 느낌 자체를 마음에서부터 붓으로, 먹으로, 화면으로, 일련의 창생 과정을 통해 하나의 소우주를 창조한다.”
남강(岡)이재호(1953년ㆍ대전 출생)는 실경산수를 고집하며 자연과 공감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연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그의 작품은 광대하고 장엄한 풍경을 담아내기도 하고 소소한 풍경을 묘사하기도 한다. 스케치 여행을 통해 만난 실경 체험을 토대로 한 그의 그림은 때로는 섬세하게, 또 때로는 과감하게 자연을 표현한다. 자연이라는 객관대상의 경계 안에서 의미를 찾아 담아내는 작가의 실경에는 실제의 자연에 대한 객관적인 관점과 작가의 정서적 개입이 가미된 주관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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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조 '이동하는 물, 과거, 현재, 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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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조 '생명의 서사, 물의 노래'=독일 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학 자유미술과 졸업 후 대전에 뿌리를 내리고 활동하고 있는 유동조(1952년ㆍ공주 출생)는 자연현상에 대한 사유와 성찰을 회화, 미디어, 오브제 설치 등을 통해 드러낸다. 또 그는 설치미술과 조각의 확장된 개념으로서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한다. “모든 비밀은 물속에 있다”라고 말하는 작가는 생명 탄생의 시초이며, 그것을 지탱하는 근원이자 지속가능한 에너지인 물에 주목해 물의 역사적 시간과 물이 내포하고 있는 자연과 인간의 정보를 시각화한다. 나아가 그는 정치, 사회, 경제,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자연현상에서 설득력 있는 근거를 찾아내고 그것을 예술 행위로 가공해 메시지를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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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직 '행운을 부르는 픽토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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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직 '행운을 부르는 픽토그램'=정장직(1952년ㆍ예산 출생)은 '행운을 부르는 픽토그램(pictogram)'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주역(周易)'의 자연이치를 나타내는 8괘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도안화한 얼굴형상을 중심으로 작업을 풀어낸다. 괘의 구조를 응용해 변형하거나 혹은 조합하는 방식으로 얼굴과 합성하는데, 이렇게 탄생한 결과는 추상성과 구체성이 중첩된다. 각각의 얼굴은 누군가의 인생의 역사를 담은 '압축파일'로 삼라만상을 담고 있다. 따라서 그 얼굴들은 존재의 모습이자 우주의 풍경일 수 있다. 예술의 속성을 '카타르시스'라고 여기는 작가는 '진, 선, 미'가 삼위일체 되어야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는데, 작품이 계시성을 띨 때 그 자체로 카타르시스를 포함한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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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오 어둠상자 NO.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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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오 '동북아 문명의 공통감각으로서의 예술'=김남오(1960년ㆍ대전 출생)는 대전에서 수묵화를 배운 뒤 일본을 거쳐 중국 베이징에서 학업을 마치고 그곳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북아 문화권을 섭렵한 그는 동일문화권 내의 차이와 동질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작업의 소재와 주제로 삼고 있다. 그는 현대예술의 실질적인 질문 가운데 하나인 '자연의 현대성'에 특히 관심을 갖고 있고, 자연의 가치와 이상, 자연을 파괴하는 현대산업사회의 야만, 나아가 자연을 이탈한 이성에 대한 고민을 작업 속에 담아낸다.
중국의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고가구들은 그의 작업을 담는 프레임이다. 그 공간에 폐기물을 이용해 소우주를 창조하는데, 그것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우울함과 소멸이 감돌고 멸망을 예시하는 묵시록적 언어가 가득하지만, 희미하게나마 모호한 생명의 힘을 경험하게 한다.
이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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