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복 극작가, 꿈 실현 아카데미 대표 |
지난 1910년이니까 100년하고도 4년이 지났다. 당시에 우리가 세운 학교는 하나도 없었다. 있다고 해야 서당과 서원이고 배우는 내용이 고작 해야 공자 왈 맹자왈에 중국어 학당에서 역관들에게 가르치는 중국어회화뿐이었다. 공자의 가르침이나 맹자의 가르침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 학문 속에는 자신을 다스리고 남을 배려하는 가르침은 있어도 숫자 1과 -1사이에 0이라는 숫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없었다.
0이라는 숫자가 들어가야 수가 완성되는 것이고 과학 발달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도 1층과 지하 1층은 있는데 그 사이에 존재해야 하는 0층은 없다. 왜 그럴까? 독일을 비롯한 동유럽 여러 나라는 땅층이라는 0층이 있는데….
지금 일본은 우리 대한민국을 과거 백 년 전 조선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문자나 노래와 영상이 공중을 날아 내 손안에 있는 스마트폰에까지 전달되는 기술도 일본보다 우리가 훨씬 앞섰고. 세계 제일의 글자까지도 우리가 앞서고 있으며. 동계올림픽이나 하계올림픽 등 우리가 앞서지 않은 것이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이는 속 빈 강정이 아닌 21세기에 전개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1907년 안창호 선생이 설립한 대성학교 이후 심훈의 상록수에 영향을 받은 우리 민족은 누구나 열심히 배웠고 지금도 고등학교 교실이나 도서관에 가보면 밤이 깊도록 불빛이 밝다.
그래서 침략근성 한 가지만 빼고는 일본을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외쳐대면 우리는 확실한 자료를 들이대고 일본에 반박하고 있다. 배웠기 때문이고 그래서 일본과 맞설 자신감이 있는 것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병자 수호조약)당시 일본에 대한 조선인들의 감정이 안 좋은 것을 눈치 챈 일본인들은 잔꾀를 부렸다. 조선의 고관들을 수십 명씩 여러 차례 초청해 융숭한 대접을 한다. 그때 초청받은 대표적 인물들이 김기수와 김홍집이다.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니 옳게 보고(報告) 될 리 없다. 무능했던 고종은 이들의 거짓보고에 판단이 흐려져 결국은 나라를 망치게 되었던 것이다. 요즈음도 북한에 갔다가 융숭한 대접을 받고 온 대부분 사람은 목숨을 걸고 친북 좌파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일부 국민마저 이들의 거짓 선동에 놀아나 촛불을 켜들거나, 유모차를 앞세워 거리로 뛰쳐나가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게 하는 일이 있었다. 거짓 선동이었던 것이다. 5년이 지났는데도 미국산 쇠고기 먹고 죽었다는 기사를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겨울엔 100만 원이 호가하는 노스페이스 점퍼나 캐나다쿠스점퍼를 입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한다. 비싼 수입품을 입고 다닌다 해서 자신을 지킬 수는 없다. 속 빈 강정에 불과한 과시욕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지키는 자존감은 지식을 채워서 얻는 내면의 힘에서 오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당했으면서도 배우지 못해 1910년에 또 당했다. 이제 세 번까지 당할 수는 없다. 그것이 글을 쓰는 필자나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한국 최고의 갑부였던 백남준은 물려받은 많은 유산을 가지고 남들이 하지 않는 미친 짓(?)과 기행을 일삼으며 부모의 유산을 모두 날려버렸다. 그러나 그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가 KBS TV로 방영되자 한순간에 천재적 아티스트, 비디오예술가, 작곡가, 행위예술가, 심지어 사상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던 것이다. 배웠기에 세계 제일의 예술가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주변엔 일본이나 북한,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모두 우리를 위협하는 도전적인 존재들이다. 평상시에는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지내다가도 유사시에 이들이 어떻게 돌변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느 쪽에서 지뢰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임진왜란 당시처럼 우리끼리 싸우고 물어뜯고 있다. 사생결단을 낼 것처럼 말이다. 끔찍한 일이다. 배우자. 그래서 지뢰가 어디서 터질지 미리 예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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