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미선 편집부장 |
첫 번째 천둥이 치고 그 소리를 들은 벌레들이 땅에서 나온다는 경칩도 지났으니, 올 초 계획했으나 시도하지 못했던 목표들을 새롭게 리디자인해 보리라 마음 먹는다.
3월의 이른 아침, 새학기를 맞은 아이가 새 가방에 새 필기도구를 정리하며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누구나 새 것을 품에 안으면 행복해 지는 법일까.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던 존재에 대한 설렘은 남녀노소를 불문한 로망이다.
신상, 신형휴대폰, 신차, 신제품, 신규가입, 그리고 신당….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패한 이미지의 새누리당도, 지역감정 조장과 감성팔이에 급급한 민주당도 진작에 흥미를 잃은 상태였기에 나름 깨끗하고 올곧아 보이는 안철수의 '신당 선언'에 흥분하며, 젊은시절 막대한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손에 넣고 싶던 '잇백' 출현과 같은 심장박동의 속도감을 체험했었다.
구태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새로운 정치'였고 바이러스를 잡는 강력한 백신을 개발했던 안철수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좀먹고 서민들의 삶을 오염시키는 병든 정치인을 삭제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밤새 몸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어 놓고 이른 아침 찬물을 확 끼얹는 격이랄까.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의 통합창당 선언은 황당을 넘어 멘탈붕괴 현상을 불러왔다.
분명한건 순결한 새정치의 명분은 사라졌다는 점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민주당이건 아무당이건 누구와의 동거를 통해서라도 '대권도전'에 나서겠다는 자충수의 냄새도 난다.
머리로는 이해한다 하지만 가슴은 차갑게 식어가는 느낌. 관계의 결말에서 수백배의 데미지를 받는 쪽은 더 많이 좋아한 사람이다. 정치는 생물이고,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데다 선거에 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아닌가?
맞는 말이다. 승자를 위한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에서 제3당이 성공하기란 쉽지 않은데다 지방선거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어쩔 수 없는 관계라도 얽힐 수밖에 없었을 그의 선택도 이해가 간다.
야권분열보다는 야권통합을 통해 대선에 나서겠다는 승부수는 충분히 가능한 선택이고, 향후 통합신당내에서 안철수가 정치개혁과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의견'에도 고개를 끄덕여 본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합쳐 만들기로 한 통합신당 지지율이 새누리당을 앞질렀다는 첫 여론조사도 나왔다. 여당에 대한 견제심리와 더불어 민주당에 실망해 겨울잠에 들어갔던 야권 지지자들이 슬그머니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분석이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지대 신당'은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지도부 구성, 공천권 지분할당 등 구체적 통합방식이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이는 데다 이미 지난 대선때 문재인에게 힘을 실어주며 발을 뺐던 안철수가 과거전력을 반복할 가능성이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만 매력적으로 보이는 '1+1상품'식 창당으로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 한때 박근혜 대통령보다 안철수의 지지도가 높았던 이유는 그가 강조했던 '새정치 실험'이 펼쳐지길 바라는 국민들의 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은 국민의 힘입니다. 국민의 마음을 정성껏 읽고, 국민의 소리를 진심으로 듣겠습니다. 더욱 낮은 자세로 그러나 흔들림 없이 국민과 함께 새 정치를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함께 해 주십시오.”
이제는 사라져 버린 안철수 신당 새정치연합 발기취지문 전문이다. 기존정당과의 야합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극복하며 안철수식 정치개혁을 통해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마이웨이'를 계속 걸을 수 있을 지 궁금해 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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